이재길 아시아나항공 케이터링개발팀 과장. 사진=아시아나항공 제공
이재길 아시아나항공 케이터링개발팀 과장. 사진=아시아나항공 제공
[ 김근희 기자 ] "첫사랑처럼 시간이 지나도 여운이 남는 기내식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재길 아시아나항공 케이터링개발팀 과장(42·사진)의 인생은 요리가 만들어지는 주방처럼 역동적이다. 용돈벌이로 시작한 요리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스물 넷 늦은 나이에 경주호텔 학교에 들어갔다. 17년간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하얏트, 쉐라톤 등 유명 호텔의 조리사로 일했던 그는 2010년 새로운 도전을 했다. 셰프에서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개발자로 변신한 것이다.

"'극한 경험을 해보자'라는 생각에 각오를 단단히 하고 기내식 개발자로서 아시아나항공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일하니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지난 4일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 본사에서 만난 이 과장은 웃으며 이같이 말했다. 기내식 개발자로 변신한지도 벌써 5년. 그는 그동안 약 200~300개의 메뉴를 개발했다. 그가 개발한 포두부보쌈, 김치찌개 등은 큰 인기를 얻어 아시아나항공 대표 기내식으로 자리 잡았다.

◆ 기내 환경 속 '맛의 전쟁'…"한계를 넘어라"

이재길 아시아나항공 케이터링개발팀 과장. 사진=아시아나항공 제공
이재길 아시아나항공 케이터링개발팀 과장. 사진=아시아나항공 제공
이 과장은 자신이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따분한 걸 못 견딘다고 소개했다. 아시아나항공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그의 성격 때문. 그러나 기내식 메뉴 개발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위생, 조리시간, 공간 등 호텔에 비해 제약과 한계가 많았다. 그 한계 속에서 최상의 맛과 품질을 내는 기내식을 만드는 것이 이 과장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메뉴만 개발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기내식은 위생규정을 맞춰야합니다. 호텔과는 달리 공간도 시간도 한정적입니다. 기내식은 이런 조건들을 다 부합해야 하죠. 처음에 고생 좀 했습니다."

이 과장은 호텔 조리와는 다른 기내식 메뉴 개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위생적인 기내식을 만들기 위해 위생사 자격증과 위생사를 지도할 수 있는 자격증까지 땄다.

맛 또한 놓치지 않았다. 기내식은 음식을 급속냉각기(블러스트 칠러)에서 얼린 후 다시 가열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맛이 떨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꺼내든 카드는 '색'과 '식감'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의 색은 굉장히 화려합니다. 일반 식당에서는 음식의 냄새, 요리하는 소리 등이 어우러져 손님의 입맛을 자극합니다. 기내에서는 손님이 후각과 청각으로 요리를 즐길 수 없죠. 그래서 생각해낸 게 시각입니다. 화려한 색으로 입맛을 돋우는 거죠."

그는 당근, 브로콜리, 뿌리채소 등 가열을 해도 색과 모양이 변하지 않는 재료를 주로 사용한다. 밥은 윤기와 응집력이 좋은 최고급 쌀로만 짓는다. 식감이 제대로 나는 재료를 써야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기내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기내식은 한국 문화 그 자체"…이유 있는 한식 고집
포두부보쌈(왼쪽)과 김치찌개 기내식. 사진=아시아나항공 제공
포두부보쌈(왼쪽)과 김치찌개 기내식. 사진=아시아나항공 제공
이 과장의 노력은 빛을 발했다.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은 지난 4월 영국항공서비스 스카이트랙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이코노미석 기내식' 3위에 올랐다. 특히 한식 기내식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외국 손님들은 비행기에 탄 순간부터 한국을 체험하고 싶어 합니다. 그분들에게 기내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한국 문화 그 자체죠. 이게 아시아나항공이 한식을 고집하는 이유입니다."

이 과장이 가장 애착을 갖는 메뉴는 포두부보쌈이다. 아주 얇게 압착해서 만든 포두부에 돼지고기를 싸먹는 쌈이다. 돼지고기는 흑마늘을 이용해 색을 살리고 훈제향을 냈다.

"등산에 갔다가 우연히 포두부를 먹었습니다. 기내식으로 적용하기 아주 좋을 것 같더군요. 수차례의 시도 끝에 공정에 성공했죠."

그는 이외에도 가공하기 까다로운 김치를 이용한 김치찌개, 김치 도리아 등의 새로운 메뉴를 내놨다. 이 과장에게 있어서 기내식은 늘 도전이다. 그는 현재 또 다른 도전을 준비 중이다.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언젠가 색다른 조리방식을 이용한 기내식을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만든 기내식이 시간이 지나도 기억될 수 있도록 말이죠."

김근희 한경닷컴 기자 tkfcka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