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美 프린스턴대 교수(좌)·니얼 퍼거슨 美 하버드대 교수(우)
폴 크루그먼 美 프린스턴대 교수(좌)·니얼 퍼거슨 美 하버드대 교수(우)
“영국 노동당은 케인즈를 탓해야 한다.”

지난 7일(현지시간) 집권 보수당의 압승으로 끝난 영국 총선 결과를 놓고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설전이 붙었다. 니얼 퍼거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10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보수당의 승리는 긴축정책을 끝까지 밀어붙인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 덕분”이라며 “지난 5년 동안 긴축정책은 처참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했던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 보수당은 이번 총선에서 전체 650석 중 과반인 331석을 확보하며 노동당과 초접전을 벌일 것이라던 예상을 뒤엎고 대승을 거뒀다. 야당인 노동당은 232석을 얻는 데 그쳤다.

크루그먼 “英 국가부채 잠시 늘어난 것”

퍼거슨 교수의 케인즈주의에 대한 비판은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지난 8일 뉴욕타임스에 올린 ‘생각 없는 사람들의 승리(triumph of the unthinking)’라는 칼럼에 대한 반박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빠른 경기 회복을 위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대표적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로 꼽힌다.

크루그먼 교수는 칼럼에서 “긴축 덕분에 영국이 살아났다는 것은 보수당이 퍼뜨린 잘못된 사실”이라며 “영국은 긴축정책을 써야 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비율 모두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고 금융위기로 잠시 높아졌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는 “영국에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희생을 동반하는 어려운 선택(긴축)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었다”며 “보수당에서 앞으로 누가 영국 경제를 이끌든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바보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독설을 내뱉었다.

퍼거슨 “재정확대, 문제해결 아닌 원인”

퍼거슨 교수는 이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크루그먼은 오즈번 재무장관의 긴축정책을 ‘망상’이라고 폄하하고, 긴축이 영국 경제를 ‘더블 딥(경기회복 후 재침체)’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해왔다”며 “그러나 실제로 나타난 결과는 작년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높은 2.6%의 성장률과 프랑스의 절반에 불과한 5.6%의 실업률”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당 정부 마지막해인 2009년 -4.3%였던 성장률은 보수당 정부 첫해인 2010년 1.9%로 크게 높아졌다.

그는 “작년 정부 재정적자는 GDP의 5.7%로 2009년 10%대에서 절반으로 떨어졌고 인플레이션은 2% 이하를 유지하고 있다”며 “1945년 이후 케인즈주의를 내세운 노동당 정부가 물가나 실업률을 올리면 보수당이 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케인즈주의의 재정지출 확대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퍼거슨 교수는 “1945년, 1964년, 1974년, 1997년 영국 유권자들은 복지를 확충하겠다는 말에 노동당에 표를 줬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며 “영국 국민은 과거 노동당 정부의 처참한 정부 운영 행태를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FT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는 “경제에 있어선 보수당이나 노동당이나 누가 더 낫다고 하기 힘들다”며 “이제는 재정적자와 부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금융 부문 개혁 등 영국 경제가 당면한 보다 큰 문제에 집중할 때”라고 강조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