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시스템LSI) 사업부 직원들은 작년부터 야근을 ‘밥 먹듯’ 해왔다. 신형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엑시노스 7420’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출시를 앞둔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6에 엑시노스를 집어넣는 게 목표였다. 모바일 AP는 ‘스마트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핵심 부품으로 삼성은 그간 자사 스마트폰에 미국 퀄컴의 모바일 AP ‘스냅 드래곤’을 써왔다.

퀄컴은 AP와 통신칩(모뎀)을 하나로 묶은 ‘원칩’ 기술로 세계 시장을 호령했다. 지난해 시장점유율이 53%에 육박하며 4%대에 그친 삼성을 압도했다. “삼성의 기술력이 퀄컴에 2년 가까이 뒤처진다”는 평가가 삼성 내부에서 나올 정도였다.
[속도 내는 '이재용 비즈니스'] D램·낸드 이어 엑시노스…반도체 천하통일 나섰다
삼성전자가 이달 초 갤럭시S6(갤럭시S6엣지 포함)를 공개하면서 이런 목소리는 쏙 들어갔다. 삼성폰에 처음으로 엑시노스가 들어가면서다. 일각에선 “삼성폰이니까 엑시노스를 쓴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스마트폰 사업을 책임지는 신종균 사장은 최근 “(갤럭시S6에 엑시노스를 적용한 것은) 성능이 가장 우수한 칩이기 때문”이라며 그런 가능성을 일축했다.

삼성전자가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시스템반도체의 핵심인 모바일 AP 시장까지 넘보며 ‘반도체 천하통일’을 노리고 있다. 삼성은 메모리 분야에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 강자다. 1992년 D램, 2002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선 뒤 줄곧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작년 4분기 기준 시장점유율은 D램이 41.4%, 낸드플래시가 29.7%에 달했다.

하지만 시스템반도체의 부진으로 아직까지 ‘세계 최강 반도체 기업’이란 명함을 내밀지는 못하고 있다.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의 비율은 2 대 8 정도로 시스템반도체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삼성은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선 최강자지만 시스템반도체에선 아직 존재감이 미약하다.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이 기반을 닦고 이건희 회장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반도체 사업에서 시스템반도체는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 체제’ 삼성이 넘어야 할 산이나 다름없다.

갤럭시S6에 엑시노스가 들어가면서 삼성 시스템반도체 사업의 성공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삼성의 강점은 경쟁사를 압도하는 미세공정이다. 삼성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초로 14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을 가동하고 있다.

반면 경쟁사들은 20나노대 공정에 머물러 있다. 미세공정은 반도체 회로 선폭을 줄이는 작업이다. 회로 선폭이 줄어들면 전자 이동이 쉬워져 전력 소비가 줄고 작동 속도가 빨라진다. 한 장의 웨이퍼(기판)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어 생산 단가도 낮아진다. 삼성 엑시노스도 14나노 공정을 적용한 덕분에 퀄컴의 아성을 깰 수 있었다.

14나노 공정은 삼성이 대만 TSMC에 뺏겼던 미국 애플의 모바일 AP 위탁생산 물량을 되찾는 데도 견인차 역할을 할 전망이다. 애플은 원래 삼성에 모바일 AP 위탁생산을 맡겼지만 삼성과 스마트폰 특허소송이 본격화된 2012년 이후 대부분의 일감을 TSMC로 돌렸다. 최근 삼성과 애플이 미국 외 국가에서 특허소송을 철회하기로 합의한 데다 삼성의 앞선 기술력이 확인되면서 삼성의 ‘실지 회복’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삼성 시스템반도체 사업부가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우선 핵심 설계 능력을 키워야 한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애플이나 퀄컴은 모바일 AP를 비롯한 다양한 시스템반도체를 자체 설계하지만 삼성은 핵심 설계 기술의 상당 부분을 해외 특허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바일 AP 외에 이미지센서(CIS) 등 다른 성장 분야를 키우는 일도 시급하다. 카메라필름 역할을 하는 이미지센서는 현재 일본 소니가 세계 시장의 40%가량을 장악하고 있지만 삼성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반전을 노려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