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임금인상 쓰나미, 장기불황 우려된다
한국 경제가 위태롭다. 투자, 소비, 수출, 산업생산 증가율이 일제히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1월 설비투자 증가율은 전기 대비 -7.1%를 기록, 기업 투자여건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일부 대기업도 적자를 기록하는 등 영업이익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보다도 악화되고 있다. 2012~2014년 주요 24개국 기업 영업이익 변동률은 한국이 -2.92%포인트로 가장 크게 추락한 반면 일본은 1.33%포인트로 가장 크게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순환출자 규제, 일감몰아주기 규제 등 각종 경제민주화법,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같은 환경관련법 등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 외에 지난 3년간 지속된 원화가치 절상을 근본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규제혁파, 원화가치 절하는 뒷전에 둔 채 임금을 올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일본이 엔화가치 절하로 생겨난 이익으로 임금인상을 유도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투자·배당·임금을 안 올리면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기업소득환류세제는 이달 6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미 통상임금 문제, 임금피크제 없는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처우개선, 사내하도급 금지 등 임금인상 요인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얼마나 임금이 인상될지 가늠조차 어렵다. 반면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48%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0위로, 그리스보다 낮은 수준이다.

임금수준이 낮은 것도 아니다. OECD는 2014년 임금보고서에서 구매력 기준 한국의 세후 근로자 연봉은 4만782달러로 스위스, 노르웨이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아 OECD 평균 2만9592달러는 물론 미국, 일본보다도 높은 것으로 보고했다. 주로 영세사업장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구매력 기준 최저임금도 1만5576달러로 OECD 회원국 중 10위다. 그런데도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장하며 임금인상 압박을 가하고 있다.

주로 마르크스학파, 후기 케인스학파를 중심으로 제기돼 온 소득주도성장론은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근로자임금을 인상하면 수요가 늘어나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는 논란의 소지가 네 가지 있다. 첫째, 근로자임금의 한계소비성향이 기업가 이윤의 한계투자성향에 비해 항상 높은가 하는 점이다. 기업가 이윤은 재투자하지 않으면 이익이 없기 때문에 한계투자성향이 한계소비성향보다 낮다고만 할 수 없다. 둘째, 근로자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경우에도 임금인상은 기업가의 지급능력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임금인상으로 적자가 지속되면 결국 기업은 문을 닫게 된다. 셋째, 임금이 올라도 고용이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이 전제돼 있다. 임금인상으로 고용이 감소하면 내수가 줄어들 수도 있다. 영세사업장은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할 수 없어 고용을 줄이게 된다. 넷째, 대부분 소득주도성장론은 폐쇄경제 모형이다. 그 결과 임금상승은 국내 수요를 증가시킨다. 그러나 개방경제에서는 반드시 국내 수요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도하게 임금이 오르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게 된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임금이 1988~1993년 6년간 연평균 20%씩 상승했다. 그 결과 해외투자액이 1990년 처음 10억달러를 넘어서는 등 한국기업의 해외탈출이 시작됐다. 결국 1962~1991년 30년간 연평균 9.7%의 고성장기를 마감하고 1992년부터 20년간 연평균 5.4%의 중성장기로 내려앉고 2012년부터는 3% 내외 저성장기에 진입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두된 임금인상 논쟁이 1980년대 후반처럼 한국 경제를 돌이킬 수 없는 장기불황으로 추락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기업투자증가-고용증가-임금증가로 인한 수요증대가 정답이다.

오정근 < 건국대 특임교수·韓經硏(한경연) 초빙연구위원 ojunggun@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