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나라경제보다 그룹경영 더 급해"
민간경제硏, 거시부문 연구 축소

잇단 경제쇼크…전망 믿기 어려워
그룹 요구로 산업분석에 역량 집중
삼성경제연구소 시계 1년5개월 前 멈춘 까닭은…

한때 민간 경제연구소의 간판 역할을 하던 삼성경제연구소의 시계는 2013년 10월에 멈춰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www.seri.org)에서 ‘CEO 인포메이션’ ‘SERI 경제포커스’ ‘SERI 경영노트’ 등을 보면 한 달 간격으로 빼곡하게 올라오던 연구보고서들이 이 시기 이후에 자취를 감췄다. 대외적으로 발표하던 성장률 금리 환율 전망지표도 사라졌다.

연구 인력과 예산이 줄지 않았는데도 그렇다. “삼성이라는 타이틀로 거시 전망과 정책 분석 자료를 내놓기가 껄끄러워진 데다 경영 현안을 도와달라는 그룹 계열사의 지원 요청이 크게 늘었기 때문”(연구소 고위 관계자)이라는 설명이다.

국내 민간 경제연구소가 거시경제 중심의 ‘경제연구소’에서 개별 그룹 경영 또는 업종의 조언자 역할을 하는 ‘컨설팅 펌’으로 바뀌고 있다. 당장 수익을 내거나 경영 리스크를 관리하는 기업 내부의 경영전략 연구(인하우스)를 강화하고 이른바 ‘돈이 안 되는’ 거시경제 연구 부서는 축소하거나 없애는 민간 경제연구소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 기관은 거시 전문 박사급 연구위원을 은행과 증권회사 지점 행사 때 강연이나 재무 컨설팅을 해주는 수익사업에 동원하기도 한다.

하나금융지주 싱크탱크인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지난 1월 국내외 거시경제를 다루던 금융시장팀을 해체했다. 이 팀에 몸담았던 거시경제 전문가 8명은 개인금융팀 기업금융팀 등 금융그룹의 수익성을 다루는 연구 부서로 옮겼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우리뿐만 아니라 상당수 민간 경제연구소가 거시경제 분석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 등 11개 국책연구기관, 2500여명의 연구원이 일하고 있는 세종국책연구단지 전경. 한경DB

한국개발연구원 등 11개 국책연구기관, 2500여명의 연구원이 일하고 있는 세종국책연구단지 전경. 한경DB

'경제 간판' 대신 컨설팅 주력하는 민간연구소

민간 경제연구소는 1980년대 3저(低·저유가 저금리 저달러) 호황 바람을 타고 폭발적으로 생겨났다. 국내에 박사급 경제 전문가가 부족했던 1990년대 중반 현대경제연구원(당시 현대사회경제연구소)의 연구인력은 웬만한 국책 연구기관보다 인재풀이 풍부했다. 거시정보나 정책 제언 등을 담은 보고서는 민간의 역동적이면서 참신한 시각을 반영해 최대 국책 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보다 더 각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 전반의 복잡성과 그룹 경영환경의 불확실성 고조로 그룹 내 계열사들이 주력제품 시장 전망과 경쟁 전략 등에 대한 컨설팅 요구를 쏟아내면서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0년 남유럽 재정위기처럼 사전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경제쇼크들이 밀어닥치는 상황에서 많은 인력과 비용을 들여 미래 경제 흐름을 예측하고 분석하는 일이 허망하다는 분위기도 확산됐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의 전직 최고경영자(CEO)는 “자칫 정책 현안을 잘못 다뤘다가는 정치권이나 정부에 밉보일 수 있다는 압박감도 자유로운 연구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삼성경제연구소는 거시경제 분석은 한국은행이나 통계청,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외부 자료를 가져다 쓰면서 그룹 현안과 관련 있는 제한된 영역의 정책 연구에 치중하고 있다. 신규 인력을 뽑을 때는 계열사 사업 분석을 위해 경제학 전공자 대신 제품이나 서비스와 연관이 있는 연구인력을 채용하기도 한다. SK그룹의 SK경영경제연구소도 거시경제 분석 기능을 사실상 포기했다. 대신 그룹 주력 사업인 에너지와 정보통신 등의 연구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의 팀장급 연구원은 “2008년 이후 미국의 양적 완화와 제로금리 등 기존 분석의 틀로는 예측이 불가능한 경제 상황이 연이어 나타나면서 6개월 전 경제 전망도 믿기 힘들어졌다”며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거시경제 분야보다는 미시적 산업 분석이 더 이득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민간 경제연구소가 내부 경영컨설팅이나 수익 사업에 집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연구소도 수익을 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주요 그룹들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용지출 조직인 연구소를 1순위로 올려놓기 일쑤였다. 거시 연구 부서의 통폐합도 빈번했다. SK경영경제연구소는 문을 닫았다가 2002년 다시 열기도 했다.

하지만 민간 경제연구소들이 국내외 경제 흐름 분석을 소홀히 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투자은행(IB) 연구원은 “기업들이 거시경제 흐름에 대한 전망 없이 경영 리스크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호황과 불황이 닥치는 시기를 오판하면 큰 낭패를 보기 십상인데, 최근 그 대표적인 업종이 조선과 플랜트”라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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