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쉐라톤호텔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 연례총회에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왼쪽)와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부의 불평등 해결 방안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심기 특파원
3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쉐라톤호텔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 연례총회에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왼쪽)와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부의 불평등 해결 방안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심기 특파원
소득 불균형을 둘러싼 세기적 논쟁이 연초부터 미국 경제학계를 뜨겁게 달궜다. 지난해 불평등 논쟁을 촉발한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와 경제학 교과서의 교본으로 불리는 ‘맨큐의 경제학’을 쓴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3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 연례총회 개막 포럼에서 부의 불평등 원인과 해법을 놓고 한치의 양보 없는 설전을 벌였다.

포문은 맨큐 교수가 먼저 열었다. 피케티 교수가 부의 불평등이 확대 재생산되는 원인으로 정리한 ‘자본소득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높다(r>g)’는 전제부터 파고들었다. 이로 인해 자산을 많이 가진 부자의 소득은 갈수록 늘어나 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하는 임금소득자와의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피케티 교수의 논리다. 이날 두 사람의 발표를 쟁점별로 대비해 재구성했다.

▷맨큐=‘r이 g보다 크다’는 것은 여기 모인 사람들이 대학교 1학년 때 배운 것이다. 만약 r이 g보다 작으면 경제는 비효율적인 상태가 되고 저축률이 급격히 하락한다. 경제학 전공자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성장모형 공식이 ‘r>g’이다.

▷피케티=당신의 주장대로 ‘r>g’는 경제학의 기본 성장 모델이다.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r>g’라는 공식이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r>g’ 공식에 따라 자산 축적을 통해 부의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은 경험적이고 실증적 사실이다. 자본 축적은 필연적으로 자본 소득 증가로 귀결된다.

▷맨큐=그렇다 하더라도 소득 불평등이 왜 문제가 되나. r>g라는 공식이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이자 나선형 불평등 구조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부의 불평등은 생산 기여에 대한 정당한 대가다. 자본주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당신의 비전은 받아들일 수 없다.

▷피케티=다시 강조하지만 불평등의 유일한 원인이 자본 집중화는 아니다. 과거에는 불평등의 원인이 대부분 자본의 집중화와 이로 인한 자본 소득의 격차에 있었다. 최근 한 세기 동안 자본 소득의 불평등 정도는 크게 완화됐지만 대신 근로소득의 불평등이 심해졌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맨큐=자본 소득의 증가가 부의 세습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에도 허점이 많다. 우선 후손이 부를 소비한다. 경제적 지출 외에 남을 돕기도 한다. 통계에 의하면 이런 유형의 소비가 연 3%의 자본수익률을 떨어뜨린다. 자손의 숫자도 증가한다. 평균 2명의 자녀를 둔다고 가정할 경우 35년(1세대) 기준으로 자손의 숫자가 2배로 증가한다. 당신도 애가 있지 않으냐. 이는 연평균 자본수익률을 2% 감소시킨다. 상속세도 자본수익률을 연 3% 떨어뜨린다.

▷피케티=‘r>g’는 각 가정이 안정된 자산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선 자본 소득의 일부분을 재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평등이 심화되지 않고 자본의 축적이 경제성장률과 같이 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투자수익률이 개인에 따라 다르고, 가족들이 병이 걸리는 등의 불가피한 이유로 자본 투자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부의 격차가 커지는 것이다.

▷맨큐=당신은 자본수익률을 약 연 4~5%로 가정하고 있다. 미국의 연평균 성장률을 3% 안팎으로 보더라도 앞서 말한 자손의 수와 소비가 늘어나면서 자본수익률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부의 세습이 강화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피케티=그렇지 않다. ‘r>g’가 갖고 있는 승수효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본수익률과 성장률의 격차가 클수록 불평등은 커진다.

▷맨큐=당신이 불평등 해소를 위해 해결 방안으로 제시한 누진적 부유세 역시 동의하기 어렵다. 만약 부의 재분배를 원한다면 최상의 수단은 소비세다. 소비에 대한 세금을 매기면 부자들은 부를 유지하기 위해 소비를 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 부유세 제안은 나쁜 정책이다. 모든 사람을 가난하게 하면서 평등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피케티=소비세는 빈약한 대안이다. 부의 세습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자수성가를 통해 이룬 부보다 세습 재산에 대해서는 세금을 더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소비세로는 이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맨큐=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자. 왜 우리는 부의 불평등을 우려하는가. 왜 자본을 축적하고, 보다 윤택한 삶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나. 사람들은 부의 불평등보다 정당하지 않은 부에 대해 분노할 뿐이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는 있지만 실리콘밸리나 할리우드, 메이저리그를 점령하라는 시위는 발생하지 않았다.

▷피케티=현대 복지국가에서 강조하는 부의 사회적 전환, 즉 사회안전망 확충을 통해 부의 불평등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소득과 자산에 대한 누진적 과세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날 두 석학의 발표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이어졌다. 회의장은 두 사람의 발표를 듣기 위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찼다. 포럼이 끝난 뒤 두 사람은 웃으며 간단히 악수한 뒤 헤어졌다.

보스턴=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