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적으로 발전하기보다는 서로 발목을 잡는 데 익숙한 사회…. 남의 성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무언가 특혜를 받았을 것이라고 예단하고 질시하는 문화….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해하기보다는 내 편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편견….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각종 규제와 비효율의 배경에는 ‘사회자본’이라 불리는 상호 이해, 신뢰, 배려, 질서 등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의 지적이다. 사회자본은 ‘사회 구성원 사이에 형성된 비공식적 가치와 규범’이다. 물질적인 자본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장후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진국에서 선진국 문턱에 도달했을 때 사회자본 문제가 특히 중요해진다”며 “제도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각종 규제와 비효율로 서로를 속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사회자본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가운데 29위다. 사적·공적 신뢰와 배려, 참여 등을 측정한 사회자본지수는 5.07점으로 32개국 평균(5.80점)보다 훨씬 낮았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3년 12월 전국 성인 남녀 81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사적인 이익이나 관계 유지를 위해 공적 법칙을 위반하거나 무시해도 된다’는 인식이 잘 드러났다. 예컨대 ‘규정을 엄격하게 지키면 주위 사람과 관계가 나빠질 수 있다’는 의견에 과반인 56.7%가 찬성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한국의 사회자본 수준을 국제 비교한 조사(2013년)에서도 ‘신뢰의 질’은 2.15점으로 OECD 평균(2.32점)에 크게 못 미쳤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기업들이 고도성장기에 특혜를 받았다는 인식을 많은 국민이 아직도 갖고 있다”며 “제도가 합리적이라는 믿음을 국민이 가지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