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경제가 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아 휘청거리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를 한층 더 압박하고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기업에 대한 추가 제재 법안에 서명하기로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겠다는 의도다. 올해 3월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도박’을 건 푸틴 대통령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우크라이나에서 발을 빼 서방의 제재를 벗어나거나 아니면 자본 통제 카드를 꺼낸 뒤 국제 유가가 반등할 때까지 버티는 전략이다.

○美, 러시아 제재 강화

[러시아 경제 위기] "추가 제재" 러시아 숨통 죄는 오바마…'벼랑 끝' 내몰린 푸틴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러시아 추가 제재 관련 법안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법안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러시아의 국영 에너지·방산 기업에 추가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상·하원이 이례적으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초 추가 제재는 유럽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며 의회에 부정적인 의견을 전달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 사이 태도가 달라졌다. 어니스트 대변인은 “대통령이 법안에 우려를 표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러시아를 상대로 한 전략을 수행하는 데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승인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 법안으로 푸틴을 더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법안의 핵심은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를 승인할 수 있는 조항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 기업과 거래하는 제3국 은행 및 기업까지 제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클리프 쿱찬 유라시아그룹 연구원은 FT에 “내년 출범하는 미국의 새 의회는 러시아가 추가 도발하면 세컨더리 보이콧을 승인할 것”이라며 “이 경우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이란 제재 수위로 높아진다”고 말했다.

물론 이번 법안이 러시아 경제에 당장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러시아 위기는 제재 때문만은 아니다”며 “유가 급락과 러시아의 잘못된 경제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 제재와 고립 전략이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러시아 “서방의 음모” 비난

[러시아 경제 위기] "추가 제재" 러시아 숨통 죄는 오바마…'벼랑 끝' 내몰린 푸틴
백악관은 이날 “러시아 경제는 푸틴의 손에 달려 있다”며 현명한 선택을 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푸틴이 당장 ‘항복’할 가능성이 낮다고 관측한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프랑스24’ 방송에 출연해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의 정권 교체를 의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국영방송들도 루블화 가치 급락 사태에 대해 “정권을 교체하기 위한 서방의 음모”라고 보도했다.

지난 2월까지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로 일한 마이클 맥파울은 미국 정치 전문 매체인 폴리티코에서 “푸틴은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 서방이 자신을 몰아내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이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는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물러날 기미가 아직 없다고 했다.

푸틴이 서방의 제재에 강하게 버티는 데는 국내의 높은 지지율이 힘이 되고 있다. 현재 70~80%에 이른다. 이런 인기는 집권 15년간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경제성장과 함께 국민소득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AP통신은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푸틴의 권력을 지탱하고 있는 한 축(경제성장)이 무너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푸틴의 또 다른 권력 기반인 국영에너지 기업들도 치명상을 입었다. 러시아 최대 석유기업인 로즈네프트는 중앙은행의 긴급자금을 수혈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갈수록 푸틴의 선택지는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