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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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고 했다. 정치 경제 사법 노사 등. 국민의 걱정을 덜어줘야 할 사회 중추 기능들이 오히려 국민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고 했다. 초점을 경제 쪽으로 모으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68). 그는 인터뷰 내내 “답답하다” “안타깝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40년 관료생활을 통해 다져진 그의 감각은 2014년 대한민국을 ‘총체적 위기’로 인식했다. 그리고 뼈를 깎는 개혁 없이는 한국의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미국 중국 일본은 인구나 자원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성장 잠재력이 있는 나라입니다. 반면 맨땅에서 일어선 한국은 이대로 가다간 회복은커녕 영원히 떠내려갈 수 있어요.” 칠순을 바라보는 전직 경제수장은 그렇게 인터뷰 시간을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채웠다.

윤증현 前 기획재정부 장관 "어디 하나 성한 곳 없는 대한민국…회복은커녕 영원히 떠내려갈 위기"
한국의 미래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의외로 해외에서는 한국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부적 시각으로 보면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 어떨 때는 이제 우리나라 국운이 다한 것 아닌가라는 절망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국민들은 정말 고달프고 힘이 듭니다. 어느 한 곳 마음 둘 데가 없을 정도로 사회 각 분야에 문제점이 산적해 있습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합니까.

“경제는 밤에 성장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모두 잠들었기 때문이죠(하하). 우리나라 곳곳의 병폐는 대부분 법을 고쳐야 가능한 일입니다. 강력한 리더십, 즉 든든한 정치적 뒷받침이 없이는 근본적인 사회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얘기죠. 그만큼 무엇보다 정치인들의 철저한 자기반성이 우선돼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은 찌라시 하나로 이렇게 어수선하니….”

경제에만 초점을 맞춘다면요.

윤증현 前 기획재정부 장관 "어디 하나 성한 곳 없는 대한민국…회복은커녕 영원히 떠내려갈 위기"
“최대 걱정거리는 저성장입니다. 물론 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죠. 하지만 기본적인 필요조건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옛날만큼 성장이 고용을 이끌어 내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성장을 하지 않고서는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습니다. 복지, 소득격차 등과 같은 사회정책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성장이 가장 기본적인 마중물이고 초석입니다.”

성장을 막는 요인은 무엇입니까.

“한국의 경제 성장을 봤을 때 당면한 과제는 세 가지입니다. 우선 세계 경제의 평균 성장률 이상으로 성장하는 것. 선진국을 따라잡고, 후진국과의 간극을 벌려야만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도 과제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3%대 중반이라고 추측되는 우리의 잠재성장률 자체를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 세 가지 과제를 놓고 보면 앞날이 참으로 답답합니다.”

윤증현 前 기획재정부 장관 "어디 하나 성한 곳 없는 대한민국…회복은커녕 영원히 떠내려갈 위기"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으로 들립니다만.

“성장을 하려면 우선 인적·물적 투자가 이뤄져야 합니다. 여기에 생산성이라는 요소가 더해져야죠. 그런데 이게 다 문제투성이입니다. 기업들의 투자는 경제 부총리로부터 ‘왜 투자를 하지 않고 쌓아 두고만 있느냐’는 질타가 나올 정도로 부진합니다. 인력 역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심각합니다. 그렇다고 생산성이 높으냐. 그것도 아닙니다. 대기업들이 왜 해외로 자꾸 빠져 나가겠어요. 경직된 노사문화 등으로 그만큼 국내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 아니겠어요. 여기에다 사회 흐름이라도 개방과 경쟁으로 흐르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반기업 정서만 팽배한 것이 현실입니다. 사회적 갈등과 분열은 끝이 없고요. 경제는 진공 속에서 자라지 않아요.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부문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거죠.”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방안이 있을까요.

“경제는 선택입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경우는 없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들에 투자하라고 매번 협조와 협박 사이를 오가는데, 이럴 게 아니라 왜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는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가장 큰 요인은 수익을 낼 만한 새로운 성장동력이 없다는 거죠. 기업은 이윤이 발생하면 투자하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 문제는 10년째 제자리걸음이잖아요. 이젠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서울에 호텔이 모자라서 난리인데도 많은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어요. 병원을 영리법인화하는 건 또 어떤가요. 경쟁력 있는 서비스 분야에는 길을 터 줘야 합니다. 국내에서 가장 머리 좋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의료계를 산업화하면 얼마나 경쟁력이 있겠습니까.”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규제 개혁을 외치고 있습니다만, 매번 실패하고 맙니다.

“공무원을 닦달하기만 해서는 답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공무원은 개혁의 객체인 동시에 주체이기 때문이죠. 규제를 만드는 것도, 잘못된 규제를 없애는 것도 공무원이라는 얘기죠. 관료집단을 국정 동반자로 보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공무원이 영혼이 없는지는 몰라도 양심은 있어요(하하). 제대로 이끌어가는 정치적 리더십만 있다면 개혁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개혁이 왜 혁명보다 어려운 줄 아세요? 혁명은 컨센서스가 없어도 되거든요. 그만큼 개혁에는 꾸준한 설득이 필요합니다.”

경제 외적인 부분은 어떻습니까.

“한국이 맞닥뜨린 최상위 문제는 저출산·고령화입니다. 세계적으로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에 실패한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인데요. 우리는 더 심각합니다. 이젠 정말 전향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시점입니다. 저출산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이민정책 활성화 등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하고요. 이런 획기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선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인구 정책 기능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민청’과 같은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교육개혁에 대한 목소리도 끊이지 않습니다만.

“동물의 왕은 호랑이나 사자가 아닌 ‘오리’라는 우스개가 있어요. 호랑이는 바다에서는 맥을 못 추고, 상어는 뭍에 나오면 별 볼 일 없고, 독수리는 하늘만 뱅뱅 도는 데 비해 오리는 육지와 바다에서 모두 생존이 가능하다는 거죠. 가끔 하늘도 날고요(하하). 대한민국의 교육 현주소가 바로 ‘오리 육성’이에요. 이것저것 다 조금씩은 하는데 특출나게 잘하는 건 하나도 없는 오리 같은 학생들만 길러낸다는 거죠. 이래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길러낼 수 없어요.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등 ‘3불(不)정책’부터 당장 폐지해야 합니다. 이런 걸로 교육을 꽁꽁 묶어 놓아서는 미래가 없습니다.”
윤증현 前 기획재정부 장관 "어디 하나 성한 곳 없는 대한민국…회복은커녕 영원히 떠내려갈 위기"
핵심 분석 - 윤증현 前 장관이 언급한 '저출산·고령화' 얼마나 심각하길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저출산과 고령화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출산율은 1980년대 본격적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시행한 이후 줄곧 내림세다. 2010~2015년 합계출산율은 평균 1.3명(유엔인구기금 추산) 수준이다. 여성 한 명이 가임 기간(15~49세) 중 겨우 한 명 정도의 자녀만 낳는다는 의미다. 마카오와 홍콩(각 1.1명) 다음으로 낮은 수치다. 마카오와 홍콩이 중국 내 특별행정구임을 감안하면 한국이 실질적으로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아이를 적게 낳는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합계출산율 2.5명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출산율이 떨어지면 부양률은 올라간다. 부양률은 생산가능인구(15~64세) 대비 ‘아동(15세 미만)과 노인(65세 이상)’의 비율이다. 근로자 한 명이 몇 명을 부양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0년 한국의 부양률은 27.2%로 42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중국(26.5%) 다음으로 낮다. 문제는 저출산 고령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것. 2050년에는 47.3%로 스페인(48.9%)과 일본(48.4%) 다음으로 높을 것으로 전망됐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