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에선 최근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은행연합회장, 대우증권 사장, 우리은행장을 뽑는 과정을 보면 그렇다는 지적이다. 특정인을 앉히기 위한 방법이 너무 노골적이고 직접적이어서 보이지 않는 손은 금융당국이 아닐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청와대가 지목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 추측 무성

금융당국은 애초 차기 우리은행장 후보로 이순우 행장과 이동건 수석부행장, 정화영 중국법인장 등 세 명을 청와대에 올렸다. 정부가 대주주인 만큼 인사 검증이 필요해서다. 차기 행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이광구 부행장 이름은 여기에 없었다. 청와대는 이광구 부행장과 김승규 부행장을 추가로 추천해 달라고 요구, 5명을 대상으로 인사 검증을 했다고 한다. 이를 보면 차기 우리은행장 선출 과정에서 금융당국은 철저한 들러리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은행 행장후보추천위원회(행추위)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광구 부행장의 행장 내정설이 나돌았을 정도로 행추위는 철저히 무시됐다. 행추위가 5일 이광구·김승규 부행장과 김양진 전 수석부행장을 대상으로 면접할 예정이지만, 요식행위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연임이 유력했던 이순우 행장은 연임 포기를 발표했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해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를 인정했다.

은행연합회장 선임 과정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의 힘이 작용했다. 회장을 선출하는 이사회 멤버인 은행장들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의 회장 내정설이 불거졌다. 당황한 행장들이 청와대에 하 전 행장을 회장으로 뽑아야 할지 물어봤는데, 그대로 진행하라는 답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대선캠프로 간다는 은행원들

최근 끝난 KB금융그룹 회장 선임 과정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려다 실패한 케이스로 알려졌다. 유력 후보로 거론된 후보는 탈락하고 윤종규 전 KB금융 부사장이 막판에 급부상해 회장으로 뽑혔기 때문이다. 최수현 전 금융감독원장의 경질, KB금융 사외이사에 대한 당국의 사퇴 압박 등이 이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도 많다.

이러다 보니 금융권에선 “대선캠프가 꾸려진다는 소식이 들리면 거기로 먼저 뛰어가야 할 판”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돌아다니고 있다. 대선캠프 관계자 중에서도 누가 문고리 권력이 될 수 있는지 눈여겨봐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광구 부행장뿐만 아니라 최근 선임된 홍성국 대우증권 사장도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회원이다 보니 더욱 그렇다. 한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행장을 선임한다면 업무에 충실하기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차기 대선주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 훨씬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