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다시 시험대에 선 유로존
18명의 ‘형제’가 한집에 살고 있다. 가장 부자인 맏이는 검소하고 원칙주의자다. 둘째는 삶을 즐기는 데 더 가치를 두는 편이다. 셋째도 둘째와 성향이 비슷하다.

몇 년 전 동생 한 명이 사고를 쳤다. 돈을 빌려 흥청망청 쓰는 바람에 부도가 날 지경에 몰렸다. 몇몇 빚 많은 다른 형제들도 덩달아 어려움에 처했다. 사고 친 동생이 집을 나가네 마네 하다가 결국 형제들이 급한 돈을 꿔 줘 같이 살기로 했다. 대신 나중에 비슷한 문제가 또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각자 일정 수준 이상의 빚을 지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을 정했다.

아껴 써야 vs 돈 풀어야

요즘 이 집 사정이 썩 좋지 않다. 탄탄했던 맏이의 사업이 예전같지 않다. 친구들은 신용도 좋고 이자도 싼데 돈을 빌려 투자를 늘리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맏이는 빚 얘기엔 알레르기 반응이다. 기본적으로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사업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집안의 새로운 ‘문제아’로 거론되고 있다. 사업은 내내 부진하다. 내년까지 가족끼리 정한 한도를 넘는 빚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형편상 못 지키겠으니 봐 달라고 하는 중이다. 상황이 비슷한 셋째는 둘째 편이다. 맏이는 ‘원칙대로’를 강조하지만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안팎의 악재들을 고려할 때 집안 전체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냥 “알았다”고 하면 둘째가 생활방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할까봐 걱정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얘기다. 경제 규모에 따라 맏이는 독일, 둘째는 프랑스, 셋째는 이탈리아, 사고를 쳤던 동생은 그리스다. 유로존은 지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남유럽 재정위기를 거쳐 세 번째 경기침체 위기를 맞고 있다. 독일 경제는 지난 1분기에 전기 대비 0.7% 성장에 그쳤고 2분기엔 뒷걸음질(-0.2%)쳤다. 프랑스는 올해 내내 제로 성장이다. 유로존 전체로도 2분기 제자리걸음을 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재정 안정보다 일단 경기를 살리는 게 급선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독일은 경제구조 개혁을 통해 장기 경쟁력을 길러야지, 돈 풀기 위주의 부양책은 자산 거품만 생기게 한다며 반대한다.

세 번째 경기침체 우려

프랑스는 원래 내년까지 유럽연합(EU)의 ‘안정성장협약’에 따라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맞추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 15일 EU집행위원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은 재정적자가 GDP의 4.3% 수준이다. ‘신용등급 강등’ 경고까지 받은 프랑스 정부는 100년을 금지해 온 일요일 영업 허용 등 경제활성화 방안을 서둘러 내놓고 있다.

EU집행위는 이번 주 프랑스의 예산안을 받아들일지, 퇴짜 놓을지 결정한다. 최근 프랑스의 추가 개혁을 조건으로 독일이 프랑스 예산안을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시장에선 독일이 융통성을 발휘해 유로존 경기부양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프랑스도 자국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장 티롤 톨루즈1대 교수가 “끔찍하다”고 지적한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하고 연금제도를 개혁하는 등 변화의 진정성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15년째 한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는 두 나라가 ‘유로존 경제살리기’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유로존 침체는 각국 경제에 부정적 변수이기 때문이다.

박성완 국제부장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