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자·기계 등 주력산업 중국 위협 현실화
"양적 측면에선 중국 못이겨…질적 성장 꾀해야"


상당 기간 세계 정상을 굳게 지키던 한국 주력 산업이 중국에 추월당하며 흔들리고 있다.

12일 산업계에 따르면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를 무대로 쾌속 질주하던 국내 업체들이 중국의 공세에 밀려 줄줄이 선두에서 미끄러지고 있다.

중국의 위협은 조선을 비롯해 전자, 기계, 철강, 유화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진행 중이다.

◇ 업종 전반에 거세지는 중국 위협 = 2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1위=세계 1위'라는 등식을 당연시하던 조선업계는 요즘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

영원한 1등은 없다고 하지만 십수 년째 흔들림 없이 지켜온 선두 자리를 후발 주자인 중국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은 2012년과 2013년 연속으로 선박 수주량, 건조량, 수주잔량 등 세계시장 점유율을 보여주는 3대 지표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수주잔량 금액으로 따지면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을 주로 수주한 덕분에 한국(1천14억 달러)이 중국(839억 달러)에 앞서 있으나 양적 측면에선 중국은 이미 한국을 넘어섰다.

중국의 선박 건조능력은 2013년 약 2천140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전 세계 건조능력의 39.4%를 차지하며 한국(29.5%)을 앞질렀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 데 30년이나 걸렸는데, 중국이 이렇게 빨리 쫓아올 줄 몰랐다"며 "국가적 지원을 등에 업고 무차별 물량 공세를 펴는 중국에 양적으로는 당해낼 도리가 없다"고 탄식했다.

탄식은 비단 조선업계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중국의 위협은 조선을 넘어 전자, 기계, 철강, 유화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거세지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중국 시장에서 충격을 맛봤다.

'중국의 애플'로 불리는 샤오미가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캐널리스에 따르면 샤오미는 지난 2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4%를 기록, 12%에 그친 삼성전자를 2%포인트 차로 따돌렸다.

샤오미는 지난해 불과 5%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지만 1년만에 점유율이 급성장하며 단숨에 시장 선도 브랜드로 도약했다.

세계 UHD(초고해상도) TV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시장조사기관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하이센스(海信集團), 하이얼(海爾) 등 중국 6대 TV 메이저 업체는 작년 3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세 분기 연속 점유율(매출액 기준) 합계 50%를 넘겼다.

삼성전자(21.6%)와 LG전자(10.6%)가 올 1분기에 점유율 합계 30%를 넘어서며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맞서고 있긴 하지만 중국은 이미 거대한 내수 시장을 등에 업고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다.

백색가전 부문에서도 중국 업체는 이미 선두 고지에 올라섰다.

칭다오 냉장고로 출발한 하이얼은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의 소매기준 백색가전 점유율에서 2009년부터 작년까지 5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기계설비 부문도 예외는 아니다.

건설장비 전문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는 2010년까지 중국 굴착기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업체였으나 작년 4분기에는 현지 업체에 밀리며 시장점유율 7.3%로 7위로 순위가 급락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중국 건설경기 급랭 속에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산이중공업 등 현지 업체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선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국가 기간산업인 정유·화학산업, 철강산업도 중국의 공세에 멍들긴 마찬가지다.

과거 국산 석유제품의 최대 수요처이던 중국은 최근 자체 정제설비를 증설함에 따라 수입량이 감소한 것은 물론, 아시아 시장에서 우리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국내 정유업계의 대(對)중국 석유제품 수출액은 2012년 98억 달러에서 2013년 83억 달러로, 올해 상반기 33억 달러로 감소했다.

중국의 하루 정제 능력도 1천154만7천 배럴에 달해 228만7천 배럴에 불과한 우리 정유업계는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다.

중국산 철강의 국내 시장 잠식도 심각하다.

중국산 철강제품은 저가 제품은 물론 변압기나 모터 등에 들어가는 전기강판, 자동차용 강판 등 고급강을 가리지 않고 침투한다.

한 예로 중국의 대표적 철강사인 바오산 철강은 경기도에 자동차용 강판 가공 공장을 준공하고, 한국GM에 냉연강판을 공급하는 등 한국시장을 적극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 "양적 측면에서 2위 고착 불가피…질적 성장 이뤄야" = 정상을 빼앗긴 국내 주력 산업이 중국의 위세를 뚫고 다시 1위를 탈환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전문가들의 답변은 "양적인 측면에선 불가능하다"로 모아진다.

국내 대표적 중국통으로 꼽히는 박한진 코트라 중국사업단장은 "산업적인 측면에서 중국은 세계의 '블랙홀'"이라며 "산업의 성숙 단계로 볼 때 물량이나 매출 기준으로 중국으로 1위가 넘어가는 것은 어느 업종이나 어쩔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승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국은 값싼 노동력 등을 앞세워 세계 유수 업체의 생산 기지를 현지에 유치한 뒤 기술을 습득해 선발 주자를 따라가는 전략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을 늘려 왔다"며 "중국이 차지한 몫을 빼앗아오긴 이미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거대한 내수시장을 등에 업고 물량 공세를 펴는 중국을 규모의 측면에서 이기려는 헛된 노력을 하기보다는 질적 승부로 내실을 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승훈 연구원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고부가가치, 프리미엄 상품에 역량을 쏟아야 한다"며 "예를 들면 조선업의 경우 고부가가치 선박은 우리가 기술 우위에 있기 때문에 쉽사리 중국이 따라오지 못한다.

정보기술(IT) 분야도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판도가 확 변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 개발을 통해 선두 재진입을 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제는 중국이 질적인 측면에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내놓은 '중국 조선해양산업의 급속 성장과 시사점' 제하의 보고서에서 "조선해양산업의 경우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완료되면 중국 조선업은 질적 측면에서도 우리 입지를 더 위협할 수 있다"며 "우리는 고부가선박과 해양플랜트, 기자재 시장을 차별화하고 고부가가치 기술을 접목한 상품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한진 코트라 중국사업단장은 "이제 세계 시장 1위를 따질 때 매출이나 물량보다는 순이익이 더 중요한 개념이 됐다"며 세계 시장에서 순이익을 내려면 우리 기업들이 제품이나 마케팅의 현지화를 통해 제품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단장은 "최근 중국 업체 샤오미가 삼성 갤럭시폰을 밀어내고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이제 우리가 뭘 잘 만드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현지 사람들이 과연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제품을 원하느냐를 들여다보는 게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판매에 있어서는 현지 사람을 앞세워 제품을 파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마련"이라며 "제품의 현지화뿐만 아니라 마케팅의 현지화, 인력의 현지화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중국을 공략하지 않고는 세계 1위를 노릴 수 없는 만큼 중국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비용절감을 위해 '메이드 인 차이나'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제는 핵심기술, 부품·소재 경쟁력을 바탕으로 중국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면서 중국 내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는 '메이드 위드 차이나'를 표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남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식과 기술을 효율적으로 융합해 더 큰 부가가치를 생성할 수 있는 쪽으로 상품을 발전시킨다면 중국을 밀어내고 다시 세계 정상을 되찾는 게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ykhyun1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