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홈쇼핑 직원들이 지난 1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리스타트 2014 행사에서 ‘기업문화 개혁을 위한 우리들의 약속’을 작성해 벽에 붙인 후 둘러보고 있다.
롯데홈쇼핑 직원들이 지난 1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리스타트 2014 행사에서 ‘기업문화 개혁을 위한 우리들의 약속’을 작성해 벽에 붙인 후 둘러보고 있다.
지난 1일 경기 일산의 킨텍스 제2전시장. 대형 전시장의 조명이 꺼지고 중앙 무대에서는 연극이 시작됐다.

“내 전처 통장에 저번 달 돈이 안 들어왔다는데 어떻게 된 거야. 새 차가 좀 필요한데 어떻게 안되나.”(회사 간부가 협력업체 사장에게)

“오늘 패밀리데이니까 회식이나 하지. 퇴근이라고 했어? 니가 뭐 한 게 있다고 벌써 퇴근이야 ×××야.”(팀장이 팀원에게)

배우들의 입에서는 욕설과 비속어가 여과없이 쏟아져 나왔다. 객석에서는 공감한 듯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관객은 롯데홈쇼핑 직원 650여명. 행사장에는 ‘롯데홈쇼핑 리스타트 2014’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롯데홈쇼핑은 전직 사장과 임직원 등 10명이 납품 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돼온 회사다.

◆6시간의 참회 이벤트

"갑질 부끄럽다" 롯데홈쇼핑 임직원 650명의 '집단 고해성사'
이날 행사는 외부 컨설팅 회사의 도움을 받아 회사의 문제점을 낱낱이 털어 놓으면서 기업 문화의 대혁신을 꾀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일종의 ‘고해성사’와 같은 자리였다. 첫 프로그램은 뇌물 수수 등 협력업체에 대한 횡포와 사내에 만연한 욕설 문화 등을 전문 배우들의 연기로 재구성하는 ‘플레이백 씨어터’였다.

이어 직원들이 무작위로 두 명씩 짝을 이뤄 회사의 문제점을 얘기하는 순서가 진행됐다. 20분씩 번갈아 가며 한 사람은 질문만 하고, 한사람은 대답만 했다. 6명씩 조를 이뤄 앞으로 회사 문화를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토론을 벌였다. 토론 결과는 포스터로 만들어 행사장 벽에 붙였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사내 갑질 NO, 난 양심의 선을 지키겠다” 등의 내용이 많았다.

이 회사의 강현구 사장은 행사 중간에 무대에 올라 “개혁 선포식 한번 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기업문화 혁신을 위한 태스크포스(프로젝트팀)팀의 3개월간 활동 결과도 소개됐다. 회사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비판을 전담하는 ‘팀 레드’와 임직원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경영진에게 전달하는 ‘리스너(listener)’ 제도를 신설키로 했다. 팀레드를 총괄하는 최고책임자(CRO)를 두고, 직원 15명으로 구성된 혁신팀도 만들어진다. 이날 행사는 오전 11시에 시작해 오후 5시까지 6시간 동안 진행됐다.

◆쉽지 않은 기업문화 개선

행사장에 걸린 전 직원들의 캐리커처.
행사장에 걸린 전 직원들의 캐리커처.
강 사장이 처음부터 이 행사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그는 직원들과 자주 저녁도 먹고, 소통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TF와 컨설팅회사가 각종 문제점을 지적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이를 전 직원과 공유하자고 제안했을 때는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포커스그룹 인터뷰(FGI) 결과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 “회사 다니는 것이 부끄럽다, 기회가 생기면 이직하고 싶다”는 의견이 다수였기 때문이다. 강 사장은 FGI 결과를 보고 “억울하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해서 눈물이 맺혔다”며 “회사를 바꾸기 위해 나부터 변하겠다는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이런 롯데홈쇼핑의 행사에 대한 내외의 반응은 엇갈린다. 이날 참석한 직원들 다수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익명으로 써낸 평가카드에서 일부 직원은 “회사의 변화를 믿지 못하겠다. 형식적인 행사일 뿐”이라는 비판적 의견을 내기도 했다. 또 20% 정도의 직원은 “앞으로의 실천이 중요하다”며 판단을 미뤘다.

홈쇼핑 업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홈쇼핑의 비리는 회사 임직원들 사이에서 조직적으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한번의 행사로 뭔가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힘들다”며 “문화가 변하는 것은 장기적인 과제”라며 회의적 전망을 내놨다. 강 사장은 이런 지적에 대해 “5년간 노력해도 느낄 수 있는 변화는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정해진 변화를 꾸준히 밀고 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 중에는 각 조별로 1년 뒤인 ‘2015년 7월1일 롯데홈쇼핑에 대해 언론에 어떤 기사가 날 것인지’를 가상으로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롯데홈쇼핑이 이 같은 참회의 몸부림을 통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지 주목된다.

김용준/유승호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