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 정책을 짜는 보건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국장급) 자리는 7개월째 비어 있다. 전임 이원희 국장이 지난해 11월18일 국민연금공단 기획이사로 자리를 옮긴 이후 아직까지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았다. 국(局) 내 최고참 과장이 ‘대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책임 있는 정책 결정은 어려운 상황이다. 한 간부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데 실무국장 자리를 이렇게 오래 비워 두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청와대 'OK 사인' 기다리느라…'주인 없는' 경제부처 국장자리 20개
이처럼 비어 있는 국장 자리가 경제 부처에만 20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경제신문이 20일 복지부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 중앙정부 경제 부처 10곳을 조사한 결과다. 부처 한 곳당 평균 국장급 두 자리가 비어 있는 셈이다.

부처별로 현재 공석인 국장 자리는 기재부가 5개로 가장 많고 이어 복지부와 국토부(각 4개), 산업부(3개), 공정거래위원회(2개), 미래창조과학부·고용노동부(각 1개) 순이다. 국장 자리를 다 채운 부처는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와 금융위원회 세 곳뿐이었다.

경제부처 맏형격인 기재부의 경우 각 부처 운영 예산과 인건비를 편성하는 행정예산심의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서 핵심 역할을 해야 할 관세정책관을 비롯해 협동조합정책관, 입법심의관, 복권위원회 사무처장 자리가 공석이다.

특히 관세정책관 자리는 지난해 11월4일 전임자인 하성 국장이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기획단장으로 옮긴 뒤 8개월째 비어 있어 기재부 내에서조차 “없어도 되는 자리냐”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직원들에게 인기를 잃은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인사 공백을 제때 메우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산업부는 지역경제정책관, 정책기획관, 기술표준원 기술규제대응국장 자리가, 국토부는 토지정책관, 철도국장, 종합교통정책관 등이 공석이다.

정무직인 장·차관이나 1급과 달리 실무국장 자리가 이렇게 많이, 오랫동안 공석인 채로 남아 있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민간 전문가를 뽑는 개방형 직위 공모가 늦어진 탓도 일부 있지만 무엇보다 청와대의 인사 개입이 어느 때보다 심해졌기 때문이란 게 관가의 지적이다. 과거엔 청와대가 장·차관 및 정무직이나 다름없는 1급 인사에만 관여했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국장급 인사까지 입김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당초 작년 말이나 올해 초 실·국장 및 과장급 인사를 단행하려던 상당수 부처들은 국장급 이상에 대한 청와대의 ‘OK 사인’이 나지 않자 과장급 인사만 마무리한 채 청와대 눈치만 살피고 있다. 최근 개각에서 장관이 교체된 부처는 신임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국장급 이상 인사는 꿈도 못 꾸는 분위기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장급은 정무직인 1급 이상과 달리 실무 책임자”라며 “청와대가 국장 인사까지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부처가 청와대만 쳐다보게 되고 장관은 인사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해 무기력해졌다”고 지적했다.

주용석/김홍열/고은이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