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에리언 前 CEO
엘 에리언 前 CEO
엘 에리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월 회사를 떠난 이후 세계 최대 채권펀드 핌코의 명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빌 그로스 창업자의 독재적 회사 운영이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리언 CEO의 퇴임도 최고투자책임자(CIO)인 그로스와의 갈등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핌코는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 기관투자가도 돈을 맡겨 놓은 거대 자산운용사다.

미국의 펀드 평가회사인 모닝스타는 18일(현지시간) 핌코의 평가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투자자의 돈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관리되는지 평가하는 ‘관리(stewardship)’ 등급을 B에서 C로 낮췄다. 또 펀드 수수료, 기업문화 등을 평가하는 ‘양성기초점수(parent pillar score)’도 ‘긍정적’에서 ‘중립’으로 강등했다.

이번 평가를 주도한 모닝스타의 에릭 제이컵슨 선임 애널리스트는 “새로 선임된 여섯 명의 임원이 투자위원회에서 그로스 CIO에게 반대 의견을 내놓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회사를 직접 방문해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스와 마찰을 피하려고 해 최고의 아이디어가 사장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빌 그로스 창업자
빌 그로스 창업자
설상가상으로 그로스가 운용하는 대표 펀드 ‘토탈리턴펀드’에서는 지난해 411억달러의 투자금이 빠져나갔다. 펀드 업계 사상 최대 규모다. 유출 속도는 둔화됐지만 올해도 계속 돈이 빠져나가는 추세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5월 벤 버냉키 당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양적완화 규모 축소(테이퍼링)를 시사한 이후부터 채권시장이 하락세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스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핌코의 기업문화를 우려해 돈을 빼는 고객도 적지 않다. 투자회사 헤리지티캐피털의 폴 슈와츠 회장은 최근 고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핌코의 문화는 다른 의견이 장려되거나 존중받는 동등한 팀 문화가 아니다”고 평가했다. 그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엘 에리언 CEO의 퇴사는 막장 드라마에 가깝다”며 “최근 고객 돈 일부를 핌코 펀드에서 다른 펀드로 옮겼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의 투자자문사인 패트리사 제퍼존도 최근 투자자들의 돈을 핌코 펀드에서 뺐다. 그는 “경영진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가 그 펀드를 떠날 때”라며 “조직 운영을 잘하는 펀드가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