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원 한라그룹 회장과 범현대가의 ‘몽(夢)’자 돌림 연합군의 끈끈한 유대관계에 재계의 관심이 다시 쏠리고 있다. 2008년 한라그룹이 만도를 되찾아올 때 저력을 발휘했던 범현대가의 ‘몽(夢) 연합군’이 이번엔 경영난을 겪던 (주)한라(옛 한라건설) 회생을 위해 다시 한 번 뭉쳤다는 점에서다.

정몽원 회장의 한라건설 구하기…범현대家 '夢브러더스' 뭉쳤다
한라그룹 주력 계열사인 (주)한라는 지난 7일 서울 가산동 복합쇼핑몰 하이힐을 KTB자산운용이 조성한 펀드에 3293억원에 매각했다.

▶본지 3월8일자 A11면 참조

(주)한라는 부동산 경기침체로 2011년부터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했다. 2011년 말 1조1750억원이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잔액을 작년 말 1420억원으로 줄였지만 여전히 부실 부동산사업 매각이 원활하지 않아 경영 정상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복합쇼핑몰 하이힐이 대표적이다. 한라그룹은 정몽원 회장의 주도로 작년 상반기 PF사업장 매각을 위한 태스크포스팀(TFT)을 만들었지만 하이힐을 사겠다는 곳이 없었다. 지하 5층~지상 20층의 이 쇼핑몰의 공사 미수대금만 1000억원이 넘기 때문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자 정 회장이 직접 매각작업 전면에 나섰다.

정 회장은 작년 하반기부터 현대백화점KCC 등 범현대가 그룹을 상대로 하이힐 인수전에 참여해줄 것을 설득했다.

사촌인 현대백화점그룹 정몽근 명예회장과 조카 정지선 회장, 역시 사촌인 KCC 정몽진 회장과 정몽익 사장을 찾아가 투자 수익성을 직접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막내 삼촌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도 만나 협조를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의 설득 작업이 빛을 본 건 이달 초. 현대백화점과 KCC는 각각 400억원을 출자해 KTB자산운용 펀드를 조성하고 하이힐 자산을 담보로 2100억원을 대출받아 총 3293억원에 하이힐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주)한라는 이로써 공사 미수대금 1000억원과 PF 보증채무 900억원을 털어내 보증채무를 520억원으로 낮출 수 있게 됐다. 3년째 이어진 부실을 거의 다 털어낸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를 두고 “2008년 만도 인수 과정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라그룹은 1998년 외환위기로 경영난을 겪자 이듬해인 1999년 그룹의 모체인 만도를 해외 투자사 선세이지에 눈물을 머금고 매각했다. 고(故)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은 2003년 경영위기를 넘긴 직후부터 만도를 되찾아오려 노력했으나 2006년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타계했다. 그는 아들 정 회장에게 “만도를 꼭 되찾으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에 정상영 KCC 명예회장 주도로 범현대가는 정 회장이 만도를 되찾는 데 힘을 보탰다. KCC는 한라그룹이 만도를 인수하기 위해 만든 컨소시엄에 참여해 자금을 댔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직접 나서지는 않았지만 물밑에서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