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왜 기업가정신인가
경제 성장의 엔진 역할을 해 온 한국 기업들의 역동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536개 국내 상장기업(금융사 제외)을 대상으로 작년 1~3분기 경영성과를 분석한 결과 매출증가율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은 2009년 매출증가율(1.33%)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세계 경제가 바닥을 치고 회복세로 돌아섰는데도 매출이 준 건 한국 기업들이 단기성과주의에 집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미래성장을 염두에 둔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나왔고 대기업 총수들에는 징벌적 처벌이 부과되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일단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독버섯처럼 퍼져 나갔다. 다행히 최근 들어 경제민주화 바람은 잦아들고 있지만 한 번 꺾인 ‘기업가정신’은 두고두고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게 뻔하다.

현실 안주형 기업인 늘어

‘기업가정신’이 약해지면서 수성(守成)에만 힘쓰는 현실 안주형 최고경영자(CEO)들이 늘고 있는 점도 걱정이다. 신규 투자에 따른 위험에 잔뜩 겁을 먹고 단지 노동생산성과 경영효율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투자뿐 아니다. 장기투자가 필요한 연구개발(R&D) 의지도 예전같지 않다.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혁신형 기술 혹은 제품이 좀체 나오지 않는 이유다.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여도 양질의 일자리가 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기업 CEO의 평균 임기가 3년이 안되는 상황에서 5년 혹은 10년 뒤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투자에 적극 나서는 경영인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한국 기업의 아프리카 진출이 부진한 것도 역동성 상실 탓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창간 50주년을 맞아 최근 ‘뜨는 시장, 아프리카를 가다’를 기획물로 다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대륙을 찾아 각국 기업의 움직임을 살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기업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당장 돈을 벌기 쉽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접근해야 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시장 중국이 독식

중국은 달랐다. 연간 수백억달러씩을 쏟아부으며 아프리카를 속국화할 태세다. 앙골라 수도 루안다 인근 신도시 킬림바는 중국 국책은행들이 앙골라 정부에 35억달러를 빌려주고 앙골라 정부는 중국 국영건설사인 중신건설에 공사를 맡겼다. 1만여명의 중국인 노동자가 투입돼 2012년 말 1단계로 710개동의 아파트를 완공했다. 중국 정부와 기업이 공조체제를 구축해 아프리카를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올해 우리 정부의 아프리카에 대한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지원 규모는 3억5000만달러로 중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다. 1976년 현대건설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공사 수주와 같은 중동건설 신화는 먼 옛 얘기가 됐다.

모험 정신으로 무장한 개척자적 기업인이 나오지 않으면 세계 경제가 살아도 한국 경제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서둘러 규제를 없애고 기업인이 존경받는 풍토를 조성해 ‘기업가정신’을 다시 꽃피워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아프리카 시장이 중국의 텃밭으로 변해 가는 것을 쳐다만 봐야 할 판이다.

이익원 산업부장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