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순 박가네빈대떡 대표가 맷돌로 간 녹두로 갓 만든 빈대떡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박금순 박가네빈대떡 대표가 맷돌로 간 녹두로 갓 만든 빈대떡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지난 16일 낮 12시 서울 종로광장전통시장 동쪽에 자리 잡은 ‘먹거리장터’. 점심 요기를 하러 온 손님들로 좁은 통로가 발디딜 틈이 없었다. Y자형 먹거리장터의 한가운데 교차지점에 있는 ‘박가네빈대떡’에도 손님들이 밀려왔다. 일본 관광객인 듯한 중년 여성 세 사람은 좌판에 빈대떡 한 장을 시켜놓고 “오이시(맛있다)”를 연발했다. 박가네빈대떡은 하루 4만명이 찾아오는 종로광장전통시장 먹거리장터의 ‘대표선수’로 꼽힌다.

○해남 배추, 신안 천일염

[전통시장 히든챔피언] 박가네빈대떡, 북한 녹두·철원 맷돌로 부친 '군침 꼴깍' 빈대떡…10년째 4000원 '착한 가격'
박가네빈대떡이 문을 연 것은 12년 전인 2002년이다. 좌판 형태의 1호점을 시작으로 3호점까지 이어져 있다. 본점으로 불리는 3호점은 1·2·3층을 합쳐 330㎡(약 100평) 가까운 규모를 자랑한다. ‘박가네순대’ ‘박가네대구탕’ ‘박가네육회’ 등 3개 점포가 더 있다. 6개 ‘박가네’ 체인점을 운영하는 사람은 추귀성 사장(68). 그는 연간 매출이 10억원에 달하는 먹거리장터의 ‘거상’이다. ‘박가네’란 상호는 아내 박금순 대표(62)의 성을 딴 것이다. 그는 18세 때 광장시장에 발을 디딘 뒤 야채와 생선 장사로 잔뼈가 굵었다. 2002년 좌판에서 시작한 빈대떡이 인기를 끌면서 지금은 점포 6개에다 시장 안에 저온창고만 5개 보유한 기업형 먹거리집을 경영하고 있다.

추 사장은 “사람들이 우습게 아는 빈대떡이지만 최고의 재료만 씁니다. 최선을 다하면 실패하는 법이 없다는 게 저의 장사철학이죠”라고 말했다. 그는 빈대떡이 원래 북한 음식이이어서 원재료인 녹두를 북한산만 쓸 정도로 고지식하다. “중국을 통해 들어오는 녹두를 한 번에 5t씩 사놓죠. 40㎏들이 부대 125개나 되는 물량인데 이 정도는 있어야 안심이 됩니다.”

김치를 만드는 원재료인 배추는 속이 꽉 찬 전남 해남산을 쓴다. 밭떼기로 포기당 500~600원에 사서 1만포기 분량의 김치를 1년에 한 번 담근다. 김치에 들어가는 소금도 아무 것이나 쓰지 않는다. 천일염 중 가장 품질이 좋은 전남 신안산 소금을 20가마씩 사서 3~4년간 숙성해 간수가 쏙 빠진 것으로 김치를 담근다. 숙성된 천일염은 짜지 않다. 한 장에 4000원인 빈대떡 가격은 10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고 있다. 원재료 대량 구입으로 구매 단가를 낮추기 때문만은 아니다. 추 사장은 “충남 천안이나 강원 춘천에서 전철을 타고 먹거리장터를 찾아오는 노인들이 꽤 많아요. 여기 와서 노인 둘이 빈대떡 한 장, 막걸리 하나 시켜 놓고 한두 시간 놀다 가는데, 값을 올리면 얼마나 서운하겠어요”라고 말했다.

○가맹점은 사절

추 사장은 2년에 한 차례씩 강원 철원에 간다. 그곳에서만 나는 돌을 사오기 위해서다. 철원에서 나는 현무암은 겉이 매끈하고 거칠지 않다. 잘 닳지도 않는 게 특징이다. 이 현무암으로 만든 맷돌이어야 녹두 진이 제대로 나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가네빈대떡에서 쓰는 맷돌은 모두 추 사장이 철원에서 직접 날라온 현무암으로 제작된 것들이다.

빈대떡 재료로 쓰는 김치와 양파는 대량으로 사서 전남 무안 현지에 농협에서 임대한 저온창고에 보관한다. 가게에서 쓰고 남은 양파는 적당한 시기에 도매시장에 가지고 나가 경매에 넘기기도 한다. 망 하나에 20㎏ 들어가는 양파를 한꺼번에 3000망씩 사들이는 ‘큰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추 사장의 면모는 매장 시설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가게마다 화장실을 두었다. 3층으로 된 본점은 층마다 화장실이 있다. 이 시장 전체를 통틀어 2개뿐인 공용화장실보다 추 사장 개인이 설치한 화장실이 더 많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게마다 금연실도 설치했다. 다른 가게에는 없는 화장실과 금연실 면적을 매장으로 바꾸면 손님 100명은 거뜬히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는 “다른 상인들이 바보 짓거리를 한다고 하지만 뜻이 있다”며 “지금은 미디어를 통해 많이 알려져 먹거리장터에 손님이 하루 4만명이나 몰리지만 자칫 자만해서 불친절하고 불편하고 비위생적이란 평가를 받으면 언제 손님이 썰물처럼 빠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고객의 편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시장의 터줏대감답게 틈만 나면 주변 상인들에게 초심을 잃지 말라고 당부한다. 한결같은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추 사장은 주위의 끈질긴 요청과 권고에도 불구하고 가맹점을 내주지 않는다. 가맹점을 내달라는 사람들은 빈대떡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빈대떡 하나에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손님이 북적대는 겉모습만 본다는 것. “고객을 왕처럼 생각할 자세가 안돼 있는 사람들에게 이름을 빌려줄 수는 없는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