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4곳 중 3곳 "올 노사관계 더 나빠질 것"
대기업 H사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을 넉 달가량 앞두고 벌써부터 고민에 빠졌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는 노조의 요구로 골치를 앓았던 작년보다 올해 노사 갈등이 더 심각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당장 작년 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통상임금 범위를 다시 정해야 하는 데다 60세 정년연장법 시행을 놓고 노조와 단체협상도 벌여야 한다.

또 근로시간 단축 법안이 올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휴일특근 시스템도 확 바꿔야 한다. 여기에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예고하는 등 ‘외풍’도 만만치 않게 불어닥칠 조짐이다. H사 노무담당 임원은 “올해 노사관계는 온통 지뢰밭이고 곳곳에 폭탄이 깔려있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올해 노사관계가 최악의 국면을 맞을 것이란 위기감이 산업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 각종 노동관계 법·제도 변화로 갈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연초부터 공공부문 노조를 시작으로 파업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어서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표심을 잡기 위해 친노동, 반기업 법안을 내놓을 것이란 우려도 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2일 발표한 ‘2014년 노사관계 전망’ 설문조사에는 산업계의 이런 위기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232개 조사 대상 기업 중 76.3%가 ‘올해 노사관계가 작년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고 답했다. ‘작년보다 좋아질 것’이라고 답한 기업은 2.7%에 불과했다. 노사관계 불안을 우려하는 응답 비율은 복수노조가 시행된 첫 해인 2010년(88%) 설문조사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노사관계 불안 요인은 각종 노사관계 법·제도 변화였다. 경총 조사 결과 응답 기업의 20.2%가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노사 갈등’을 올해 최대 불안 요인으로 꼽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작년 12월18일 통상임금 논란에 대한 판결을 내놨다. 그러나 ‘상여금 소급 지급 조건’ 등을 놓고 노동계와 경영계 간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고용노동부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새로운 통상임금 산정 지침을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만들겠다고 했는데, 판결 이후 한 달이 지났는데도 노사정위가 제대로 열리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년 연장 및 임금피크제 도입’(18.3%)과 ‘근로시간 단축’(13.6%) 등을 노사관계 불안 요인으로 꼽은 기업도 많았다. 이와 관련, 정부와 정치권은 작년 하반기 60세 정년연장법을 통과시켰지만 임금피크제와 연계하는 방안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법안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외풍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61.4%의 기업이 ‘6월 지방선거가 노사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했다. 정치권이 노동계·시민단체와 손잡고 노동계 편향적인 입법을 추진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다. 이런 악재들이 많은 탓에 65%의 기업이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은 3~4개월 이상 장기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