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소재 M&A 전쟁'…'걸음마' 한국…밀리면 끝
“일본 경제가 좋아지고 환율도 유리해서 최대 이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13일 일본 최대 첨단 소재 업체인 도레이의 나고야 공장에서 만난 아베 고이치 최고기술책임자(CTO)는 “50년간 탄소섬유 시장을 개척한 것처럼 개발하기 힘든 소재라도 끈질기게 매달려 반드시 사업화에 성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저 효과를 최대한 활용해 첨단 소재 분야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겠다는 것이다.

도레이는 소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달 한국 법인인 도레이첨단소재를 통해 수처리 업체인 웅진케미칼을 품에 안았다. 수처리 및 다양한 소재 분야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보고 국내 기업들보다 높은 4300억원을 인수가로 제시했다.

소재 강국인 독일과 미국 기업들도 인수합병(M&A) 전에 뛰어들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금 상황이 나아지자 소재 산업 기반을 서둘러 구축하려는 전략이다. 선진국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인수전에 뛰어들어 지난 4년간 굵직한 M&A만 9건에 달한다. 미국 다우케미컬이 188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해 특수 소재 업체인 롬앤하스를 인수한 데 이어 이듬해 독일 바스프가 31억유로(약 4조5000억원)로 독일 소재 업체인 코그니스를 사들였다.

이에 비해 한국은 글로벌 소재 M&A 대전에서 빠져 있었다. 지난 9월 제일모직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 업체인 독일의 노바엘이디를 인수한 게 사실상 전부다. 한국은 전자 부품 수출을 늘려 세계 5위 소재·부품 강국으로 올라섰으나 첨단 소재에선 대일 무역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일본과의 부품·소재 무역에서 200조원 이상의 손해를 본 게 한국 소재 산업의 현실이다. 최근 들어선 중국도 한국산 대신 자국산 소재를 쓰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신두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한국 소재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며 “미국과 일본 수준의 소재 경쟁력을 갖추려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소재 특화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대기업들도 소재 산업의 경쟁력이 완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판단에 따라 소재 전문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삼성은 제일모직을 전자부품 소재 전문기업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은 정보전자 소재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키울 방침이다.

정인설 기자/도쿄=안재석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