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닙니까? 사업비 증액을 반드시 수용해주길 바랍니다.”

“예결위에서 잘 논의할 테니 장관도 사업이 잘되도록 적극 노력해달라.”

내년 예산안 국회 처리시한을 넘겨 뒤늦게 시작된 예산심의가 일찌감치 국회의원들의 지역사업 챙기기로 변질되고 있다. 통상 예산안 계수조정소위에서 지역 민원을 담은 ‘쪽지예산’을 반영하는 게 관례지만 초반부터 과열 양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역 예산부터 챙기는 의원들

6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위 경제부처질의에서는 내년 세수 전망이나 재정건전성에 대한 질의보다는 여야 구분 없이 지역사업부터 챙겨달라는 요구가 쏟아져나왔다. 이학재 새누리당 의원은 지역구인 인천 로봇랜드 사업 지연을 문제 삼았다. 새로운 신성장 동력산업인 로봇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진작 추진했어야 한다며 정부를 몰아붙였다. 이 의원은 또 한강 수심이 낮아 서해로 이어지는 아라뱃길에 큰 배가 다니지 못한다며 정부가 한강 준설 예산부터 시급히 반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대출 새누리당 의원도 서울과 지역구인 진주 간 KTX가 3시간30분이나 걸린다며 남부내륙철도를 건설하기 위한 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용역비를 배정해달라고 했다. 또 지역구인 진주와 사천시, 남해와 하동군 등 4개 시·군을 대상으로 한 동서통합지대 조성사업이 지지부진하다며 정부가 편성과정에서 뺀 7억원의 사업비를 반영해줄 것도 요구했다. 같은 당 김성찬 의원은 지역구인 진해에 조성된 해양공원인 솔라파크에 전시관 건설을 지원해 달라고 했다.

야당인 민주당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찬열 민주당 의원은 지역구인 수원 주민들의 서울 출퇴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인덕원~수원 간 복선전철이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경기도 공약에서 약속했던 사업이라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박주선 무소속 의원은 지역구인 광주광역시에 영세기업을 위한 지식산업센터 건립을 강조하고, 정수성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4월 무너진 지역구 저수지 둑을 보수하기 위해 예산증액을 요구하는 등 이날 예결위 질의는 지역사업 요구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속 보이는’ 예결위 구성

예산안 심의 '꼴불견'…시작부터 지역사업 챙겨
정부는 정책질의보다 의원들의 이 같은 지역사업 요구가 빗발치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의원들의 요구성 질의에 “사업 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발언으로 일단 비켜갔다.

기재부는 의원들이 겉으로는 내년 세수 부족을 얘기하지만 한편에서는 각 의원이 노골적으로 지역예산 확보에 나서고 있다며 자칫 예산 심의 자체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예결위 구성도 예산안의 균형 잡힌 심의를 어렵게 하고 있다. 예결위원 50명 중 20%를 차지하는 10명이 지역개발에 관심이 많은 국토교통위 소속인 반면 복지위는 단 2명에 불과하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개별 상임위에서 별도로 심의과정을 거치겠지만 일단 지역사업을 챙기기 위한 예결위 구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여야의 대립으로 예산심의 기간이 짧아져 가뜩이나 졸속 심의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의원들이 지역구부터 챙길 경우 균형 잡힌 예산심의가 이뤄질 수 없다”며 “특히 내년에는 박근혜 정부의 중간평가라고 할 수 있는 지방선거까지 예정돼 있어 지역예산 확보전이 더욱 격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심기/이태훈/김우섭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