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 설계사의 꿈…보험왕의 '두 얼굴'
“죽을 힘을 다해 보험왕에 오르니 주변의 시선과 대우가 달라졌습니다. 자연히 악착같이 자리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지고 불법적인 제안이나 유혹에 흔들리게 되더군요.”

보험사에서 그해 최대 보험료 수입을 올린 설계사에게 주는 ‘보험왕’에 여러 차례 오른 한 생명보험회사 설계사의 말이다. 보험왕이라는 화려한 타이틀 이면에는 말 못할 고민도 많다는 얘기다.

40여만명의 설계사가 꿈꾸는 보험왕. 일단 보험왕이 되면 대우가 달라진다. 사무실과 기사가 딸린 자동차를 제공받고 한 해 수입은 10억원을 뛰어넘는다. 기업의 각종 행사에 강사로 초청받고, 영업 비결을 담은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한다. 개인 비서는 물론 세무사와 법무사를 고용해 팀 단위로 움직이면서 계약을 따내 보험왕 타이틀 지키기에 집착하는 이유다.

보험 가입자의 돈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한 보험왕이 지난 13일 경찰에 붙잡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불법 비자금 관리에까지 연루된 Y씨는 국내 최대 보험사에서 10년 연속 보험왕을 차지해 ‘설계사의 전설’로 불리던 인물이다. 그가 경찰 발표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한 해 255억원의 매출(수입보험료)을 올리는 등 명성이 자자한 보험왕의 연루설은 보험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업계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보험왕의 영예를 얻기 위해 검은 유혹을 외면하지 못하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설계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실적에 대한 압박과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워낙 커 보험왕들이 무리한 영업이나 불법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보험왕 시상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