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성 기자의 와인 칼럼 '우리의 와인' < 4회 >

댄디, 자신만의 독창성을 열렬히 이룩하려는 욕구에 사로잡힌 정신적 귀족주의자
사진= 소호 '맥퀸' 피노 누아(왼쪽)와 알렉산더 맥퀸(맨 오른족)의 생전 디자인 작품(가운데). 출처=알렉산더 맥퀸 공식 홈페이지

사진= 소호 '맥퀸' 피노 누아(왼쪽)와 알렉산더 맥퀸(맨 오른족)의 생전 디자인 작품(가운데). 출처=알렉산더 맥퀸 공식 홈페이지

'미식 천국' 미국 뉴욕에 르 베르나딩(Le Bernadin)이라는 식당이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해산물 요리를 만드는 레스토랑이라고 평가받습니다. 7개 뿐인 뉴욕 미슐랭 3스타 중 한 곳으로 지난 4월 영국 잡지 '레스토랑'이 선정한 '2013년 세계 최고 레스토랑 톱 50' 중 19위에 올랐죠.

르 베르나딩을 이끄는 에릭 리퍼트 수석 셰프가 지난 11일 한국에 왔습니다. 한식당으로는 처음으로 뉴욕 미슐랭 2스타를 받은 '정식(JUNGSIK)'의 한국 고향집 서울 신사동 정식당을 둘러봤다고 합니다. 정식당 임정식 셰프와는 이태원에서 술잔도 기울였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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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주였던 14일 뉴질랜드 미녀 한분도 한국에 왔습니다. 뉴질랜드의 젊은 와이너리 '소호'의 마케팅 디렉터 앰버 해튼이었습니다. 에릭 셰프 이야기를 먼저 드린 이유는 지난해 르 베르나딩의 와인리스트에 유일하게 오른 뉴질랜드 와인이 바로 소호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뉴질랜드 소호 와이너리의 마케팅 담당 디렉터 앰버 햄튼(28). 패셔너블한 와이너제품만큼 앰버의 패션감각도 뛰어나다.

사진= 뉴질랜드 소호 와이너리의 마케팅 담당 디렉터 앰버 햄튼(28). 패셔너블한 와이너제품만큼 앰버의 패션감각도 뛰어나다.

창의적 음식을 존중하는 에릭 셰프는 새로운 맛과 이야기를 가진 와인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지난 14일 앰버 디렉터가 서울 신사동 아카데미 듀뱅에서 직접 개최한 소호 와인 설명회에 다녀왔습니다.

소호는 와인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자랑하는 곳 중 하나입니다. 소호 이름에서부터 감이 오시나요?

소호는 뉴욕 맨해튼의 남쪽, 휴스턴가와 커널가 사이 패션·화랑 밀집지역입니다. 가난한 예술가의 천국이라 불렸던 곳이지요. 소호라는 명칭은 남부 휴스턴(South of Houston)의 약자입니다. 원래 공장·창고 밀집지였습니다. 이후 맨해튼이 뉴욕 중심지가 되면서 공장은 쇠락했고 임대료는 낮아졌죠.

1950년대부터 버려진 창고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로프트라 불리던 창고 공간은 이후 설치 예술가들이 생활하면서 작품을 전시·제작하는 아지트로 변모했습니다. 특히 1980년대에 신표현주의 회화가 활기를 뛰면서 감각 있는 화랑과 상점들이 잇따라 들어섰습니다. 서울의 홍대거리처럼 유명세를 타면서 임대료는 올랐습니다. 가난한 예술가들은 많이 떠나갔지만 '예술의 거리'라는 명성은 소호의 공간적 아이콘이 됐죠.

뉴질랜드 와이너리 소호도 예술가의 혼을 와인에 닮는 곳입니다. 특히 젊은 예술 혼입니다.

앰버 디렉터가 설명회에서 선보인 '소호' 와인은 4종류였습니다. 이름만으로도 독특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소호 '웨스트우드' 로제, 소호 '맥퀸' 피노 누아, 소호 '스텔라' 쇼비뇽 블랑, 소호 '화이트 콜렉션' 쇼비뇽 블랑 등입니다.

먼저 소호 '웨스트우드' 로제. 누구 떠오르는 사람 있으신가요?
사진= 소호 '웨스트우드' 로제(왼쪽)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디자인 작품. 출처=비비안 웨스트우드 공식 홈페이지

사진= 소호 '웨스트우드' 로제(왼쪽)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디자인 작품. 출처=비비안 웨스트우드 공식 홈페이지



정답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입니다. 속옷을 옷 밖으로 끄집어낸 파격적 영국 디자이너죠.

'웨스트우드'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독특함을 와인에 담고자한 와인입니다. 저도 그녀가 추구했던 파격을 떠올리며 와인을 마셔봤습니다. 로제 와인은 보통 기포가 든 스파클링 종류인 이탈리아 프리잔테(약발포성 음료) 류가 국내에 많은데요. 단맛이 강하고 과일향 탄산음료처럼 편하게 술술 넘어가는 것들이 많죠.

소호 웨스트우드 같은 로제는 처음이었습니다. 품종도 스파클링보다는 레드와인에 더 많이 쓰이는 메를로(85%)와 말벡(15%)입니다. 드라이하게 단맛은 없고, 구조감 높은 레드 와인 풍미에 탄산이 녹아있습니다. 메를로 베이스 와인의 익숙함에다 말벡의 화사함, 그리고 스파클링의 독특함이 함께 느껴집니다.

펑키(funky)했습니다. 시대를 파괴하고 한발 앞서 나간 비비안 웨스트우드처럼 교과서적 와인이 아닙니다. 목 뒤로 넘어가는 짜릿함과 선명하고 화사한 맛. 자못 섹시하기까지 합니다.

두번째 와인 소호 '맥퀸' 피노 누아(100%).

알렉산더 맥퀸을 떠올리셨다면 당신은 트렌드를 아는 분입니다.

[김민성 기자의 '우리의 와인'] '핫'한 파티 혹은 '작업용' 와인이 필요한 당신에게

알렉산더 맥퀸. 2010년 젊은 나이에 요절한 영국 천재 디자이너죠. 프랑스 패션 브랜드인 지방시(Givenchy)하우스의 수석 디자이너였고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 상'을 네 번이나 거머쥔 남자입니다.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옷 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도 유명하죠.

'맥퀸' 피노 누아를 마셔보니 소호가 왜 이 와인에 맥퀸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고급 피노 누아 와인의 대표적 향은 '화약 냄새'입니다. 붙 붙은 화약의 연기마냥 매캐합니다. 누군가는 철의 냄새라고도 하고 깨를 프라이팬에서 볶을 때 나는 탄 내라고 표현하는 분도 있죠.

'맥퀸'의 첫 인상도 이런 화염이었습니다. 와인을 혀 위에 올리니 피노 노아 특유의 산도가 쨍합니다. 단맛은 자제됐지만 구조감은 앙상하지 않습니다. 목 뒤로 넘겼을 때 끝맛은 깔끔하게 떨어집니다.

'차가운 불꽃'이었습니다. 생전 맥퀸은 강렬한 이미지가 지배하는 패션쇼에서 새롭고 복잡한 선을 가진 옷을 선보였습니다. 어떤 과거 방식에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운 패션'을 추구했다는 평을 들었죠. 젊은 패셔니스타들로부터 항상 뜨거운 지지를 받은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마흔 한살 전성기 나이에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소호 '맥퀸'은 직선적이고 단조로운 쓴맛이 많은 뉴질랜드 피노누아의 전형성을 탈피한 와인입니다. 개성 넘치는 레이디 가가처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뉴질랜드 피노누아의 새로운 이정표로 평가받습니다.
사진= 소호 '스텔라' 쇼비뇽 블랑(인쪽)과 스텔라 매카트니의 작품. 출처=스텔라 매카트니 공식 홈페이지

사진= 소호 '스텔라' 쇼비뇽 블랑(인쪽)과 스텔라 매카트니의 작품. 출처=스텔라 매카트니 공식 홈페이지


소호 '스텔라'와 '화이트 콜렉션'은 쇼비뇽 블랑 100% 화이트 와인입니다.

소호 '스텔라'는 에코 디자인으로 명성 높은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를 지지합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영국 비틀즈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의 딸입니다. 엄격한 채식주의자로 옷을 만들 때 어떤 동물성 재료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멋진 외모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패션계의 부도덕함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에코 시크(eco chic)와 윤리적 트렌드의 대명사가 됐죠.

소호 '스텔라'도 자연 친화적이고 애틋한 인간미가 느껴집니다. 세계적 쇼비뇽 블랑 산지인 뉴질랜드 말보로 지역의 순수한 테루아(포도밭의 자연적 특성)를 그대로 와인에 담고 있거든요. 청명하고 깔끔한 쇼비뇽 블랑의 매력을 한껏 발산합니다.
사진= 소호 '화이트 콜렉션' 쇼비뇽 블랑(왼쪽)과 스텔라 매카트니의 흰 옷 작품. 사진=스텔라 매카트니

사진= 소호 '화이트 콜렉션' 쇼비뇽 블랑(왼쪽)과 스텔라 매카트니의 흰 옷 작품. 사진=스텔라 매카트니


'화이트 콜렉션'은 런어웨이의 순수를 상징합니다. 순수의 상징, 흰 옷을 떠올리며 와인을 마셔봤습니다. 깊은 산에 샘 솟는 약숫물처럼 깨끗하고 미네랄이 가득합니다. 쇼비뇽 블랑 와인은 뉴질랜드 대표 품목인데요. 다른 지역 쇼비뇽 블랑과 비교해봐도 향과 맛 모두에서 절제미가 돋보입니다.

소호는 이처럼 파격적인 패션 디자이너들의 삶을 와인에 접목했습니다. 뉴질랜드에 이전에는 없던 젊은 와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새로움 못잖게 와인을 만드는 방식은 테루아를 가장 중시하는, 클래식입니다.

참 댄디(Dandy)합니다. 우아한 복장 못잖게 세련된 몸가짐으로 은연 중 우월함을 드러내는 그런 멋쟁이가 댄디의 표상이죠.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댄디를 이렇게 정의했다고 합니다.

"댄디, 자신만의 독창성을 열렬히 이룩하려는 욕구에 사로잡힌 정신적 귀족주의자"
[김민성 기자의 '우리의 와인'] '핫'한 파티 혹은 '작업용' 와인이 필요한 당신에게

소호 와인 자체가 댄디한 멋쟁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뉴욕의 소호처럼 활기차고 새롭지만 그 내면에는 클래식한 전통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과거 어디선가 만난 멋진 여인을 다시 마주한 것처럼 낯익지만 다시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한병의 멋진 와인은 가방이나 시계, 구두 못잖은 훌륭한 패션 아이템이 됩니다. 소호 와인 한병 손에 들고 파티장에 들어서는 남녀를 상상해보세요. 시크하고 매력적인 패셔니스타로 보이지 않을까요.

앰버 디렉터는 소호 와인의 개성을 '섹시함(sexy)', '즐거움(fun)', '퀄리티(quality)'라고 표현했습니다.

섹시함, 즐거움, 그리고 고품질(?).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가 이성에게서 찾는 그런 매력들이지 않나요? 매력적 외모, 위트 넘치는 성격에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
[김민성 기자의 '우리의 와인'] '핫'한 파티 혹은 '작업용' 와인이 필요한 당신에게

불타는 금요일밤 '핫'한 파티에 초대받았거나 마음을 설레게하는 멋진 이성과 나눌 '작업용' 와인이 필요한 당신에게 소호 와인을 강력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p.s. 1) 파티 혹은 '작업용' 와인으로 위 소호 와인 4개 중에서 꼭 하나만 추천해달라고 하시면, 전 '웨스트우드' 로제를 추천드립니다. 효과요? 드셔보시면 압니다^^ 가격은 6만원대 입니다.

p.s. 2) '우리의 와인'에서 들려드리는 오늘의 노래는 제이 지(Jay-Z), 알리시아 키스(Alicia Keys)가 함께 부른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Empire State of Mind)입니다. 소호의 고향, 뉴욕의 가치를 노래하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노래입니다.


글·사진=한경닷컴 김민성 기자 mean@hankyung.com 트위터 @mean_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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