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핑퐁, 당국은 뒷북…멍드는 기업
은행들이 한진해운의 영구채 발행을 위한 보증 참여를 놓고 ‘핑퐁 게임’을 벌이고 있다. 뒷짐을 지고 있던 금융감독원이 뒤늦게 보증 참여를 독려하고 나섰지만 아직은 소득이 없다. 이러는 사이 한진해운이 발행한 회사채가 연 9.8%에 거래될 정도로 한진해운의 신용도만 떨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채권단 중심의 기존 기업 구조조정 제도에 문제가 생긴 만큼 새로운 제도를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24일 금융계에 따르면 한진해운이 영구채를 발행하기로 한 것은 작년 말이다. 이후 잠시 연기했다가 지난 9월 초 재개했다. 하지만 은행들의 보증을 아직 받지 못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보증에 참여하면 2억달러가량 보증을 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주채권은행답게 채권단 회의를 통해 방법을 찾아보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1억달러의 보증을 요청받은 우리은행은 “채권액이 550억원으로 농협은행(1000억원)이나 부산은행(800억원)보다 적은데 우리한테만 보증을 서라고 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채권액 550억원인 하나은행도 “시장 상황을 더 보겠다”며 발을 빼고 있다. ‘한진해운을 살리라’는 사인만 보낸 채 뒷짐을 지고 있던 금감원이 뒤늦게 나섰지만 은행들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 일부 기관투자가는 지난 23일 만기가 8개월 남은 한진해운 회사채(신용등급 A-) 31억원어치를 연 9.8%에 매매했다. 투자등급 중 가장 신용도가 낮은 ‘BBB-’ 등급 회사채 거래 금리(평균 연 6.3%)보다 3.5%포인트 높다.

비단 한진해운만이 아니다. 구조조정 중인 기업 채권단에서 발을 빼는 은행도 늘고 있다. 국민·부산·대구은행은 이달 초 STX그룹 계열사인 포스텍에 대한 자금 지원을 거부하고 자율협약에서 빠졌다. 신한은행 등도 대한조선 자금 지원을 거부하고 채권단에서 탈퇴했다. 채권단 위주의 기업 지원 및 구조조정 체계가 삐걱거리고 있는 것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동양그룹 사례에서 보듯이 채권단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며 “공적 구조조정 전담기구 설립을 포함해 다른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창민/이태호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