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란 ‘바람직한 사회질서를 위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기업과 개인의 행위를 제약하는 것’을 뜻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못 팔게 하는 것은 국민 안전을 위해 필요한 규제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센 규제는 경제 활동을 옥죈다. 정부가 규제 개혁을 강조하는 이유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초반부터 ‘전봇대 뽑기’를 외쳤고, 박근혜 정부는 투자 활성화를 위해 기업들의 ‘손톱 밑 가시’를 빼주겠다고 했다.

관료사회 '규제 본능'…신설규제, 없앤 것의 9배

○1만5000건 전수 분석

하지만 현대경제연구원이 29일 평가한 지난 5년간의 규제 개혁 성과는 낙제점이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신설된 규제는 1650건으로 폐지된 규제 183건의 9배에 달했다. 내용을 봐도 규제 완화(75건)보다 강화(611건)된 것이 훨씬 많았다. 규제 개혁과는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돼 시행 중인 규제 1만4977건을 모두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각 부처는 소관 법령에서 규제가 생기거나 바뀔 때마다 이를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하고 있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은 “정부가 2009년 보이지 않는 규제를 발굴해 대거 등록한 것은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2010년 이후에도 규제 증가 속도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제규제가 더 심해져

지난 5년간 보건복지부에서만 규제가 385건 늘었다. 금융위원회(377건) 공정거래위원회(177건) 환경부(174건) 등도 부지런히 규제를 내놨다. 복지부와 금융위, 환경부, 고용노동부, 소방방재청 5개 부처가 전체 규제의 27.7%를 차지해 편중 현상이 지적됐다. 김 연구실장은 “노동과 금융 규제가 상대적으로 많은 게 특징”이라며 “이 분야의 국가경쟁력이 하위권인 이유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효율성이 중요한 경제 분야에서 규제는 더 심해졌다. 규제의 강도에 따라 ‘약한 규제’(신고와 자료제출 등)부터 ‘강한 규제’(금지와 인가 등)까지 1~4점을 매긴 결과 경제적 규제의 강도는 평균 2.51점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규제(2.47점)나 행정적 규제(2.14점)보다 더 세다. 후진적인 규제에 속하는 ‘가격 규제’는 지난 5년간 188건(4.7%)에서 250건(5.0%)으로 늘어났다.

○‘파킨슨의 저주’ 끊으려면

왜 규제는 줄지 않는 것일까. 김 연구실장은 ‘공무원의 수는 업무의 경중과 상관없이 일정하게 늘어난다’는 파킨슨 법칙을 들었다. 그는 “정부는 관료 필요에 따라 확대되고, 규제는 공무원 권력과 연계돼 늘어나기 쉽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생리를 바꾸기 위한 규제개혁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공무원 규모와 규제 건수를 비교해도 드러난다. 중앙 행정부처 공무원 1만명당 규제 건수는 지난해 242건. 그런데 지방공무원 1만명당 규제 건수는 1677건으로 7배에 달했다. 중앙부처는 등록규제의 심사와 개혁을 전담하는 조직이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에는 이 같은 시스템이 부족해 규제가 남발된다는 설명이다. 형식적인 규제일몰제도 문제다.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2010년~2012년 8월 신설된 규제 가운데 존속기한이 설정된 것은 1.3%에 불과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규제 건수를 공무원 수에 연계해 제한하는 ‘규제총량 규제’를 제안했다. 영국은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2010년 ‘기존 규제 폐지 없이는 새로운 규제를 만들지 않는다’는 ‘원인 원아웃(One In, One Out)’ 정책을 내놨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