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은 6일 "금융실명제는 나쁜 관행을 끊는 계기가 된 훌륭한 정치적 결단이었다"고 회고했다.

진 전 위원장은 1993년 금융실명제 도입 당시 재무부 해외투자과장으로 있으면서 '비밀작업팀'에서 실무를 맡았다.

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 두번의 실명제 도입 좌절이 있었을 때도 준비단에 참여해 실명제와의 인연이 깊다.

그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금융실명제가 새 관행 정착에 기여했지만 긴급명령으로 시행돼 선의의 불편이나 부작용도 있었다"면서 "정책적으로 접근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고 말했다.

다음은 진 전 위원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요지.

-- 금융실명제 도입 당시 어떤 역할을 했나.

▲5공화국 당시 전두환 대통령 때 처음 법률을 만들 때 강만수 과장(전 산은금융지주 회장) 밑에서 사무관으로 있으면서 관여했다.

6공화국 당시 노태우 대통령 때 만들어진 준비단에서도 윤증현 단장(전 기획재정부 장관) 밑에서 총괄반장을 맡았다.

두번 다 유보됐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 때 꾸려진 비밀작업팀에서 금융 분야를 맡아 추진했다.

-- 당시 실무진으로서 실명제 도입을 어떻게 평가하나.

▲실명제 도입은 무기명이나 가명 등 좋지 않은 거래 관행을 끊고 새로운 쪽으로 전환하는 큰 계기를 마련한 훌륭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새 계기를 열고 20년이 흘렀으니 틀을 마련하고 새 관행 정착에 기여했다고 본다.

-- 전격 도입 이전 두 번의 시도에서도 실무진을 맡았다.

경과가 어떠했나.

▲금융실명제는 5공 정부에서 이철희·장영자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타개하고 새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처음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누가 보더라도 그 당시에는 경제적·정책적 여건이 실명제를 수용하기 어려워 무산됐다.

6공 정부 때 다시 추진이 됐을 때에는 시간도 더 흐르고 나름대로 준비 작업도 거쳤기 때문에 정책적 틀을 만들어서 갈 수 있었는데 또 유보가 됐었다.

오히려 그때 제대로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추진 당시 어려웠던 점은.
▲대통령이 선언하고 우리는 거기에 따라 작업을 한 것이다.

비밀 각서까지 쓸 만큼 제일 신경 쓴 것은 비밀 유지였다.

또 공론화를 하지 않고서 추진하다 보니 최대한 부작용과 충격이 적게 갈 수 있도록 내용을 생각하고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

-- 도입 당시 아쉬웠던 점이 있나.

▲정치가가 아닌, 정책을 30년 이상 한 사람으로서 볼 땐 아쉬운 측면이 있다.

지금은 사람들이 다 잊어버렸지만 그 당시 긴급명령으로 실명제를 실시했으며 정착 과정에서 여러 선의의 불편이나 문제가 발생했다.

우려했던 경제 혼란이나 시장 혼란은 사전에 다 짚고 준비했기에 큰 부작용은 없었지만, 실명으로 전환해야 하는 개별 거래와 관련해 기존 관행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많아 유권 해석을 하고 보완을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강력한 조치에 의해 일을 하게 되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나 불편이 있게 된다.

지하경제나 범죄, 정치자금 거래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과세의 공평성을 꾀하자는 목적이었는데, 금융실명제가 '전가의 보도'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하경제 양성화에 실명제가 토대를 만든 것은 맞지만, 효과를 발휘한 것은 신용카드 소득공제 활성화였다.

돌이켜보면 정책적으로 종합적 접근을 통해 실명제를 이룰 방법에 대해 모색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차명계좌 금지법 등 도입 움직임을 평가한다면.
▲지혜롭게 종합적으로, 금융실명제가 기여한 부분과 하지 못한 부분을 잘 따져가며 하는 게 좋다.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동기가 순수하다고 해서 결과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지금은 실명제 도입 당시와 다르게 관련 법제도 잘 돼있다.

정치적 접근보다는 정책적으로, 제도와 행정의 균형을 찾아야 할 것이다.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나는 다른 보직을 맡으면서 비밀작업팀에 참여했다.

오전에는 정상 출근했다가 직원들에게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오후에 나와 실무진 아파트로 갔다.

두 달간 그런 식으로 새벽 3∼4시까지 일하고 나오니 아파트 경비들이 수상하게 생각하더라.


(세종연합뉴스) 차지연 기자 charg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