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들이 경영권 방어에 비상이 걸렸다. 대주주 의결권은 제한하면서 국내외 펀드와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이 조정 없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수 있다고 재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상법 개정에 따른 영향을 분석한 결과 지주회사 체제인 SK·LG·GS·두산 등이 상법 개정안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지주사 전환 SK·LG·GS '위험'…감사위원 선임 투기펀드 놀이판

○최대주주에만 족쇄 거는 상법 개정안

GS는 2004년 LG그룹에서 독립하면서 지주회사 체제로 탈바꿈했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정부 방침에 따른 조치였다.

정부 시책에 부응했던 경영 판단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상법 개정안의 후폭풍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주요 그룹들은 몇몇 계열사를 통해 주요 기업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지만, GS 같은 지주사들은 지배 체제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계열사들을 대신해 지주사가 주요 기업의 지분을 대량 보유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시행에 들어가면 이런 지주사 체제가 오히려 경영권 방어에 취약해지게 된다.

지주사 전환 SK·LG·GS '위험'…감사위원 선임 투기펀드 놀이판
지난달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상법개정안은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감사위원회를 만들기 위해 감사위원을 이사와 분리 선임하도록 하면서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했다. 사내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는 최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의 의결권만 3%로 묶고, 사외이사인 감사위원 선출 시에는 3% 이상인 대주주의 의결권을 모두 3%로 제한했다. 어떤 경우든 지주회사 체제의 최대주주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예를 들어 지주사인 (주)GS는 GS리테일의 65.7%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는 3%의 의결권만 행사할 수 있다.

(주)GS의 전체 보유 지분 65.7% 중 3%를 제외한 62.7%의 의결권이 사라지지만 미래에셋자산운용은 6.33%의 지분 중 3.33%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삼성자산운용은 1.41%(4.41%-3%), 국민연금은 0.26%(3.26%-3%)의 의결권을 손해보게 된다.

62.7%의 지분을 보유한 (주)GS는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3% 의결권만 갖게 되지만 18.72%의 지분을 가진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13.72%의 의결권을 갖게 된다. 결국 전체 의결권 32.25% 중 3%의 의결권을 가진 (주)GS는 9.3%(3%/32.25%)의 의결권만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불평등한 구조는 지주회사 체제인 SK LG 두산 같은 다른 그룹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삼성전자, 롯데 등 그룹 계열사들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의 경우 행사 가능한 의결권이 상대적으로 많긴 하지만 투기자본의 공격에 맞서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집중투표 의무화도 위협 요인


기업들은 집중투표제와 집행임원제도를 의무화하는 것도 경영권을 행사하는 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평등과 다수결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한다. 집중투표제는 상장사에서 2인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의결권이 있는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갖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사 3명을 뽑을 때 한 주를 가진 주주는 3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소액주주들은 자신이 원하는 후보에게 3표를 모두 몰아줄 수도 있다. 이 같은 집중투표제는 ‘1주 1의결권’ 원칙에 따라 권리를 주는 주식회사의 주주평등과 다수결 원칙에 위배된다는 게 재계 설명이다.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나라는 미국 일본 러시아 등 20여개에 달하지만 의무화한 나라는 러시아 멕시코 칠레 등 단 3곳에 불과하다. 미국은 1940년대 22개 주에서 집중투표제를 강행 규정으로 도입했지만, 1950년대 이후 대부분이 임의 규정으로 완화했다. 일본에서는 집중투표제로 주주 간 경영권 분쟁이 많아지자 상법 개정을 통해 실시 여부를 회사 자율에 맡겼다.

전삼현 숭실대 법대 교수는 “집중투표제를 통해 최대주주와 2, 3대 주주 등이 각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로 이사회를 채울 경우 분쟁으로 신속한 의사결정이 늦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 교수는 “단기 배당이나 주가 상승만 노리는 해외 투기나 적대적 인수합병(M&A) 세력들의 이사회 장악을 쉽게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산 2조원 이상인 상장사에 대해 집행임원제도를 의무화한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집행임원은 이사회가 결정한 사항을 실무에서 집행하는 최고경영자(CEO) 등을 말한다. 집행임원제를 시행하면 이사회는 감독기능만 갖고, 집행기능은 집행임원이 맡게 된다.

재계는 세계적으로 집행임원을 강제하는 나라는 없는 만큼 국내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적으로 집행임원제가 적용되면 이사회에서 기업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고,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이사회와 집행임원이 대립 관계에 있으면 의사 결정이 늦어져 업무 집행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정인설/서욱진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