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CEO 팀쿡
애플CEO 팀쿡
지난해 특허 분쟁 이후 공급선에서 ‘탈(脫)삼성’ 전략을 추진해온 애플이 2015년부터 다시 삼성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아이폰에 탑재하기로 한 것은 기술력 때문이다. 기술에서 앞선 삼성 AP를 배제할 경우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과의 경쟁에서 버텨낼 수 없어서다.

삼성전자는 애플이 떠날 경우 상당한 실적 쇼크가 우려돼 왔다. 2011~2012년 애플 관련 매출이 연간 10조원에 달할 정도로 많아서다. 삼성전자가 기술력으로 ‘애플 리스크’를 극복함에 따라 실적 우려는 줄어들 전망이다.

애플을 되돌린 첨단 기술력

시스템반도체 사업은 지난 3년간 삼성전자 내에서 가장 성장률이 높았던 사업 중 하나다. 시스템LSI사업부는 모바일 AP를 바탕으로 2009년 4조4000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을 작년 14조원(추정)으로 키웠다.

여기에는 애플의 공헌이 컸다. 애플은 2007년 6월 출시한 아이폰에 삼성전자가 텍사스 오스틴 공장에서 만든 ‘APL0098’을 탑재하는 등 스마트폰 사업 초창기부터 삼성 AP를 써왔다. 올해 9월께 나올 아이폰5S에 들어갈 A7칩도 삼성전자가 만든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메모리 기술에 비해 뒤처졌던 시스템반도체 기술을 애플로부터 배울 수 있었고, 애플은 납기와 품질을 성실하게 맞춰주는 삼성전자에 주문을 계속 했다.

[삼성, 애플에 AP 공급 재계약] 삼성의 최고 기술력 앞에…애플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난해 모바일 AP를 애플에 납품해 번 돈은 4조원을 넘는다.

삼성전자는 이에 고무돼 메모리를 만들던 기흥 9, 14라인을 작년 초 시스템반도체 라인으로 바꿨고 지난해 8월 미국 오스틴 메모리 라인에서도 전환 공사를 시작했다. 또 지난해 6월에는 화성 17라인 공사에 들어갔다. 13조원 이상을 쏟아붓는 대공사였다. 그러나 이 공사는 5개월 만인 작년 10월 중단됐다.

문제는 애플의 이탈이었다. 지난해 특허 분쟁이 격해지자 애플은 본격적으로 ‘탈삼성’을 추진하면서 모바일 AP도 공급처를 바꿨다. 대만 언론 등에 따르면 애플은 내년 아이폰6에 들어갈 20나노 AP 주문을 대만 TSMC로 돌렸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난감해졌다. 애플 주문이 빠지면 연간 4조원이 넘는 매출액이 허공으로 사라진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내후년 주문을 노리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그리고 차차세대인 14나노 공정 개발에 일찌감치 착수했다. 애플을 다시 붙잡으려면 시장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제품을 개발해야 했다. 14나노 공정의 경우 반도체 업계가 개발 중인 새로운 기술인 핀펫(FinFET)을 적용하는 첫 공정이다. 누설 전류를 줄여 소비전력을 크게 감축하는 등 20나노급 제품에 비해 40% 이상 월등히 좋은 성능을 낼 수 있다.

작년 말 삼성전자는 14나노 테스트칩 개발 성공을 업계 최초로 발표했다. 애플을 향한 시위였다. 올 1월 기업설명회(IR) 때는 “연내 14나노 미세공정 반도체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14나노 AP를 연말부터 양산할 경우 애플은 TSMC가 만드는 20나노 AP를 아이폰6에 쓰기 어려워진다. 삼성전자가 내년 초부터 갤럭시 스마트폰에 14나노 AP를 넣을 경우 이에 맞설 아이폰6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우남성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은 지난 5월9일 삼성증권 주최 IR에서 “20나노는 라이프사이클이 짧을 것으로 본다. 임시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14나노로 빨리 넘어가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연간 4조원…매출 하락 부담 덜어

삼성전자는 지난 4월 14나노 AP 시제품을 애플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5월께 마침내 계약에 성공했다. 현재 애플의 AP 개발 인력이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14나노 AP를 공동 설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이 다시 삼성 제품을 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로 분석된다. 우선 앞선 기술의 최첨단 제품을 채택하지 않을 경우 이 제품을 탑재한 삼성 갤럭시와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어서다. 14나노급은 아직 세계에서 어떤 회사도 개발하지 못한 공정이다. 인텔도 현재 14나노 공정을 개발 중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애플이 아무리 삼성과의 관계가 껄끄러워도 14나노 AP를 포기하면서까지 TSMC에 계속 주문을 줄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멀티 밴더 전략이다. 파운드리 업계 1위인 TSMC도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고 30%대 높은 영업이익률을 올리는 회사다. 퀄컴 등 수백개 고객사를 갖고 있어 애플 요구를 호락호락 수용하는 회사가 아니다. 이 때문에 애플이 멀티 밴더 전략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한 부품을 여러 개 협력사에서 공급받으며 값을 깎는 멀티 밴더 전략으로 유명하다.

애플에 대한 공급이 다시 이어지며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는 실적 부담 우려를 덜었다. 다만 TSMC가 애플 AP를 만드는 내년 하반기에는 매출 공백이 일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이에 대응해 파운더리 신규 고객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가 최근 아마존과 소니, 엔비디아 등 신규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애플의 멀티 밴더 전략에 따라 수익률이 하락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PC 수요 급감으로 중앙처리장치(CPU) 매출이 줄어든 인텔도 애플에 대한 AP 납품을 추진하고 있어 애플은 삼성전자 하나에서 삼성 TSMC 인텔 등 3개사로 넓혀진 옵션을 갖게 됐다.

[삼성, 애플에 AP 공급 재계약] 삼성의 최고 기술력 앞에…애플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 PC의 두뇌가 중앙처리장치(CPU)이듯, 스마트폰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 반도체. 여러 기능을 하는 반도체를 하나로 합친 SoC(System on chip)의 구조로, 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통신칩, 센서, 디스플레이, 멀티미디어 등 다양한 기능이 하나의 칩에 담겨 있다.

핀펫(FinFET) 공정

◆ 인텔을 필두로 삼성전자 TSMC 등이 도입 중인 3차원(3D) 입체 구조의 칩 설계 및 공정 기술. 기존 평면(2D) 구조가 아닌 입체 구조로 만들어져 반도체 성능을 한 단계 발전시킬 기술로 꼽힌다. 입체적으로 튀어나온 게이트의 모양이 상어 지느러미(Fin)처럼 생겨 핀펫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핀펫을 적용하면 누설 전류는 줄이고 성능을 높일 수 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