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은…

LG전자가 2011년 2월 첫선을 보인 ‘트롬 스타일러’는 소비자들이 옷의 구김이나 냄새를 없애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한 의류관리기다.

거실이나 안방 어디에 설치해도 세련된 느낌이 나도록 디자인된 이 제품은 저녁에 옷을 걸어두면 냄새를 없애고 잔주름을 제거해준다. 또 살균, 건조기능이 있어 다음날 아침에 새옷처럼 입을 수 있도록 돕는다.

LG 측은 김치냉장고가 새로운 시장을 연 것처럼, 스타일러가 또 하나의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생활가전 제품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3월엔 중국 판매도 시작했다.

LG는 중대형 아파트 거주자 및 맞벌이 부부 등 가정용 시장을 겨냥한 마케팅을 우선 진행하면서 고깃집을 비롯한 음식점과 골프장, 예식장 등을 대상으로 시장을 개척해왔다. 중국에서도 베이징 등 대도시 고급 백화점에서 판매하며 고소득층 소비자 유인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스타일러는 아직 새 시장을 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LG전자 측은 “올 들어 5월까지 스타일러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5% 증가했고 입소문이 나면서 추가 판매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지만 정확한 매출 자료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판매가는 보급형이 150만원, 고급형이 200만~210만원 선이다. 보루네오와 파세코 등도 비슷한 개념의 의류관리기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Biz&라이프는 트롬 스타일러로 새로운 시장을 열고자 하는 LG전자의 고민을 9명의 경영학 전공 자문위원과 함께 검토하고 대안을 찾아봤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

해결방안은…

고급스러운 편리성 더 강조해야

[비즈&라이프] LG스타일러, 김치냉장고처럼 새시장 창출하려면…페브리즈·세탁소보다 ‘뛰어난 점’ 어필하라
LG 스타일러는 P&G 탈취제인 페브리즈와 전통적인 다리미, 비용이 드는 드라이클리닝 세탁을 대체하는 상품이라 할 수 있다. 과거 비슷한 마케팅 고민을 했던 사례로 네슬레의 캡슐 커피머신이 있다. 집에서 마시는 고급 커피에 대한 니즈를 반영한 이 제품은 간편한 일회용 커피믹스, 또는 바리스타가 만드는 전문점 커피를 대체하는 상품이었다.

결과적으로 네슬레의 네스프레소는 △머신은 저렴하게, 캡슐은 비싸게 파는 이부가격(two-part tariff) △온라인·직영매장을 통한 소비자 직판 정책 △고급 레스토랑과 비행기 1등석 등에서의 체험 마케팅을 통해 새로운 상품군으로 자리잡는 데 성공했다.

소비자들이 스타일러 구입을 꺼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대체 상품인 향균 탈취제와 드라이클리닝 등에 비해 매우 높은 가격과 체험 기회가 적은 데 따른 낮은 인지도가 그것이다. 따라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새로운 관점에서의 체험 마케팅이 필요해 보인다. 병원 환자와 면회객, 어린이집 학부모 대상의 ‘건강’을 키워드로 한 살균기능 체험이 첫 번째고 비행기 비즈니스석과 백화점 VIP 고객을 겨냥해 짧은 시간에 고급스러운 옷을 얻을 수 있다는 ‘고급스러운 편리함’을 강조하는 체험 마케팅이 두 번째다.

다만 LG가 백화점과 고급식당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마케팅 가운데 ‘식당 마케팅’은 많은 사람이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나, 장기적으로 식당에서 흔히 사용되는 살균탈취제의 대체재로 인식될 위험이 있다. 스타일러의 준거 제품(reference product)을 너무 낮은 수준의 저가 제품으로 잡는 오류는 피해야 한다. (송인성 서울대 교수)

히트 상품을 원하면 티핑포인트를 만들어라


매일 수많은 신제품이 쏟아지지만 히트 상품이 되는 건 손에 꼽힌다. 말콤 글래드웰은 베스트셀러 저서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에서 작은 시류가 엄청난 유행으로 넘어가는 변환점을 티핑포인트라고 정의하고, 어떤 제품의 대유행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유형의 소비자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메이븐(Maven)’인데 이들은 항상 시장에 대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구전효과(Word-of-mouth)는 그들로부터 시작된다. 둘째는 커넥터(Connector)로 이들은 일 대 다수(One-to-many relationship)의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셋째는 세일즈맨으로 설득력과 협상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이 유형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말한 것들에 동의하게 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 이들 소수에게 집중함으로써 제품의 대유행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 즉 티핑포인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글래드웰의 주장이다.

LG 스타일러의 경우 초기에 얼리어답터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이후 매출 증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래드웰에 따르면 LG 스타일러가 메이븐의 관심을 받았지만 커넥터와 세일즈맨에게까지는 어필하지 못했다. 따라서 커넥터와 세일즈맨 그룹에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마케팅이 필요하다. 특히 여성 소비자와 많은 관계를 형성하는 파워블로거, 헤어숍, 마사지숍, 웨딩 플래너 등은 주요한 커넥터가 될 수 있다.

[비즈&라이프] LG스타일러, 김치냉장고처럼 새시장 창출하려면…페브리즈·세탁소보다 ‘뛰어난 점’ 어필하라
티핑포인트가 만들어지면 그 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스타일러를 사용하고 있는지 알리면 된다. 새 제품 선택에 보수적인 사람들도 대부분의 사람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지갑을 열게 된다. (김태현 KAIST 교수)

페브리즈냐 드라이클리닝이냐, 경쟁 상대는?

과연 LG 스타일러가 어떤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는지, 근원적인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이라 경쟁자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협의의 경쟁자일 뿐이다. 경쟁자를 정의할 땐 소비자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다른 어떤 해법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스타일러의 잠재 경쟁자로는 P&G의 페브리즈, 저가의 세탁소, 자연건조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에 비해 스타일러는 얼마나 차별적이고 우월한 가치를 줄 수 있을까.

LG는 스타일러 기능과 자연건조 및 통풍을 직접 비교하지만 경쟁자 설정이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소비자가 생각하는 대안들인 페브리즈나 드라이클리닝과 비교되는 차별적 요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페브리즈와 세탁은 화학약품을 사용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반면 스타일러는 화학약품 없이 물리적인 진동과 물(스팀)만을 사용해 살균과 구김을 제거하는 제품이다. 따라서 ‘자연건조’와 맞서 싸우기보다 오히려 옷걸이가 흔들리면서 옷감 사이에 배어 있는 먼지와 냄새를 털어낸다는 스타일러의 작동원리를 강조하는 마케팅이 필요해 보인다. 자연건조에 가장 가까운 스타일러의 강점, 피부에 무해한 살균과 탈취 기능의 관점에서 새로운 마케팅 포지셔닝을 제안한다.

LG 스타일러는 ‘이 제품으로 고객이 해결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라는 관점에서 생각할 때 어정쩡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페브리즈를 대체할 것인지, 세탁소를 대체할 것인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송상영 이화여대·이동현 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