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신용등급 도입 10년] '신용불량' 낙인 찍히면 휴대폰 개통, 정수기 렌털도 못한다
개인신용정보가 금융거래에서뿐만 아니라 신용거래가 이뤄지는 일상 생활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되는 것은 고객을 장기간 붙잡아 수익을 늘리려는 기업과 목돈 지출에 대한 부담을 줄이려는 개인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또 담보가 부족한 자영업자는 물품 공급업체로부터 신용으로 우선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공급업체는 물품 대금을 떼일 위험이 적은 자영업자를 선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작용하고 있다.

◆인터넷·휴대폰 개통 때도 신용조회


[개인 신용등급 도입 10년] '신용불량' 낙인 찍히면 휴대폰 개통, 정수기 렌털도 못한다
인터넷 개통 업체들은 고객이 이사한 집에서 처음 인터넷을 개통할 때 개인신용정보를 조회하고 있다. 요금을 낮춰주는 조건으로 1~2년씩 약정 가입을 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나쁜 사람은 약정 기간을 지키지 않고 돈을 떼먹을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싼 요금으로 일정 기간 약정 가입을 유도하는 휴대폰 판매업체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다른 통신사를 이용하다 갈아타려는 고객에 대해선 신규 가입 때 신용정보를 조회해 요금 연체 가능성 등을 점검한다.

최근 경기 침체 등에 따라 성장하고 있는 렌털시장에서도 신용등급이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TV 등 고가의 가전제품, 비데, 정수기, 렌터카, 안마의자 등이 대상이다. 정기적으로 이용 요금을 납부해야 하는 렌털 제품 사용자들이 늘면서 렌털 업체들이 잇따라 신용평가사와 계약을 맺고 신용정보를 조회해 돈을 떼일 염려가 적은 소비자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혼정보회사도 회원 가입 때 신용조회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회원 간 안전한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채무불이행 경력이 있는 회원을 가려내려는 것이다. 현재 소득이 많고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도 연체 이력이 많아 신용등급이 나쁘면 결혼정보업체의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치킨집 사장도 신용등급 좋아야
물품 대금 지급이 물품 인도 시점보다 나중에 이뤄지는 각종 업종에서도 신용정보 활용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주류 및 식품 제조·유통업체와 음식점, 술집, 슈퍼 등을 경영하는 자영업자 간에 신용정보를 주고받는 경우다. 이들 자영업자는 물품 공급 대가로 통상 제조·유통업체에 담보를 제공하고, 담보가액 범위 내에서 물품을 공급받아 판매한 뒤 대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경영해 왔다.

그러나 최근엔 담보가 부족하더라도 신용등급이 좋은 경우 물품을 공급받을 수 있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처음 거래를 시작할 때 신용등급을 보고 거래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며 “담보가 있더라도 과거 연체 이력이 많은 경우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거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거래하는 자영업자의 신용정보를 수시로 조회해 문제가 생길 경우 물품 공급량을 축소하거나 이미 공급한 물품을 회수하기도 한다.

제약업계도 마찬가지다. 제약업체는 개업 약사와 약품 공급을 계약할 때 약사들의 신용정보를 조회한다. 단가가 비싼 약품들을 먼저 공급하는 제약업체는 약값을 떼일 경우 손해가 크기 때문이다. 한 제약업체 관계자는 “거래를 오래한 약사들과 달리 처음 약국을 여는 약사들에 대해선 정보가 거의 없어 신용평가사가 갖고 있는 신용정보를 활용한다”고 말했다.

◆불법 신용조회 우려도

신용정보를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는 금융권에서 불법으로 신용정보를 조회한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개인정보 보호 약화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8개 주요 시중은행의 직원들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고객 신용정보를 개인적 목적으로 불법조회하다 적발된 건수가 1만5000건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이와 관련,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은행의 준법불감증이 계속되는 것은 감독당국의 솜방망이 제재 및 과태료 수준과도 상관 있다”며 “개인정보 부당조회에 대한 제재기준을 보다 강화해 중징계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