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테크노밸리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강남서 15분·넓은 공간…IT벤처 '판교 오피스'로
경기 성남시 삼평동 판교테크노밸리의 중심인 H스퀘어 건물 앞. 낮 12시가 되자 주변 건물에서 카카오 엔트리브소프트 삼성텔레스 등의 20~30대 직원 수백명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H스퀘어와 근처에 있는 유스페이스 등 상가빌딩 식당가로 향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세 층에 걸쳐 있는 패밀리레스토랑과 분식집 등은 낮 12시10분만 지나도 자리 잡기가 어렵다.

특히 배우 선우은숙 씨가 운영하는 맛집 ‘어니스트 키친’이나 베트남 쌀국수집 ‘메콩타이’에는 이미 10여명이 줄을 서 있었다. H스퀘어에서 일식 돈가스 집을 경영하는 이수례 씨는 “처음 입주했을 때만 해도 사람이 없어 장사를 접어야 할지 고민했다”며 “지금은 작년 이맘 때보다 세 배 정도 손님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썰렁하던 판교테크노밸리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안랩 한글과컴퓨터 삼성테크윈 SK케미칼 등 기존 입주 기업에 이어 지난해 말부터 카카오 위메이드 팅크웨어 넥스트칩 탑엔지니어링 등 대형 벤처기업들이 본사나 연구개발(R&D) 센터를 속속 판교로 옮겨 오고 있어서다.

특히 오는 8월엔 엔씨소프트, 10월엔 넥슨 등 국내 대표 게임업체들이 서울 테헤란로에서 판교로 사옥을 이전한다. 이미 입주해 있는 웹젠 스마일게이트 엔트리브소프트 블루홀스튜디오 등과 더불어 주요 게임사들이 모두 판교에 모이는 셈이다.

[판교 테크노밸리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강남서 15분·넓은 공간…IT벤처 '판교 오피스'로

◆한 공간에 모여 업무 효율 높여

입주 기업들은 판교의 매력으로 넓고 쾌적한 공간을 꼽는다.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유명한 카카오는 지난해 9월 H스퀘어 N동 6층으로 이사 왔다. 회사가 빠르게 크면서 사람은 늘어나는데 서울에선 마땅한 공간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기연 카카오 대리는 “서울 역삼동에 있을 땐 세 개 층에 나뉘어 있어 직원들끼리 소통이 어려웠고 사무실이 좁아 매번 회의실 쟁탈전도 벌어졌다”며 “400여명이 한 층에 다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아 판교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카카오가 있는 6층에는 직원들끼리 모여서 음료를 마시며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선 전체 직원 회의가 열리기도 한다.

모바일게임 ‘윈드러너’를 서비스하는 위메이드는 올 1월 판교테크노밸리에 있는 지하 5층, 지상 10층짜리 건물로 이사 왔다. 이나정 위메이드 차장은 “이전에 위메이드는 구로디지털단지, 자회사인 조이맥스와 개발스튜디오들은 서초동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회의 한 번 하는 것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모든 계열사가 다 판교로 집결하면서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엔씨소프트

시 고질적인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완공을 앞둔 판교 사옥은 대지면적이 1만1550㎡로 서울 사옥(약 2228㎡)보다 5배나 크다. 3000명의 직원이 한 건물에 다 들어가고도 200명 규모의 어린이집, 내과·정형외과·소아과를 갖춘 병원, 200석 규모의 극장, 체육관, 사우나와 찜질방 등 편의시설까지 들어선다.

◆첨단 R&D센터 속속 집결

판교테크노밸리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각종 R&D센터와 연구소를 쉽게 볼 수 있다. 7층 높이의 삼성테크윈 판교 R&D센터는 경남 창원시, 경기 수원시 기흥 등에 흩어져 있던 연구 부서를 한곳으로 모아 만들어졌다. 그 오른쪽엔 용인에서 옮겨온 LIG넥스원 R&D센터가 있다. 삼성중공업도 거제조선소의 연구 기능을 축소시키고 대신 내년 하반기 완공 예정인 판교 R&D센터에 1500명 규모의 연구 인력을 상주시킬 계획이다. 이 외에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제너럴일렉트릭(GE) SK C&C 하나마이크론 디스플레이테크 등 국내외 기업의 R&D센터가 판교로 집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우수 인력들이 경기 지역 안에서도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기피하는데 판교는 지하철로 15분밖에 걸리지 않아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판교테크노밸리 지원단에 따르면 판교에서 서울까지는 10㎞, 수원 17㎞, 용인은 20㎞ 떨어져 있다. 주위로 경부고속도로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입주 기업 간 협업도 늘어나


판교에 입주한 기업들끼리 교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코스닥 상장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 모임인 ‘1조클럽’과 예비상장기업 최고경영자(CEO) 모임인 ‘프리1조클럽’이 그것.

노정호 기업은행 판교테크노밸리지점장과 장준호 인포뱅크 공동대표가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지난해 9월 10개 기업이 참여해 시작한 1조클럽은 벌써 9회를 맞았다. 한글과컴퓨터 KG이니시스 시공테크 플랜티넷 등 23개 회원사가 한 달에 한 번 오찬 모임을 갖고 기업교류를 한다. 프리1조클럽은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모임으로 25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기업 간 교류가 활성화하면서 실제 협업 사례도 나오고 있다. 상장 계획 중인 IT서비스 중소기업 ‘벨정보’는 세종시 17개교 스마트스쿨 조성사업에 참여하면서 스마트 오피스 전문기업인 ‘이트너스’ 등 판교 테크노밸리의 다른 3개 회사와 함께 입찰했다. 스마트학습 전문기업 ‘유니온엔이씨’도 서비스 로봇을 만드는 ‘퓨처로봇’과 협력해 로봇에 스마트 러닝을 접목하기로 했다.

판교=임근호/김보영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