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銀, 26일 추가 유동성 강화 조치 제시할 듯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강력한 양적 완화 조치에 엔화 가치가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미국 등 주요국도 엔화 약세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상황이어서 엔저 현상은 당분간 질주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23일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00엔 아래에서 아직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금융시장에서는 100엔선 돌파가 머지않았다는 분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日 정부 무제한 양적완화…국제사회 '용인'
엔·달러 환율은 작년 말 아베 총리가 무제한 양적완화를 기치로 선거에 당선된 이후 상승 일로를 걸었다.

금융위기 이후 엔화 가치 상승으로 일본 수출기업의 수익이 줄자 아베 총리는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무제한 양적완화를 실시하겠다'는 대담한 공약을 내놨다.

여기다 일본은행(BOJ)의 신임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총재가 '2년 안에 물가를 2% 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엔화 가치는 더욱 하락했다.

이달 초 일본은행은 본원통화를 내년 말까지 현재의 2배 수준으로 늘리기로 하고 장기 국채 보유액의 상한선을 없애는 등 적극적인 금융 완화 조치를 내놨다.

장기 국채 보유량을 현재의 배로 늘리는 것과 더불어 상장지수펀드(ETF), 부동산투자신탁(J-REIT) 등 위험자산의 매입량도 확대하는 강력한 통화 공급조치를 단행했다.

과감한 조치에 외환시장은 뜨겁게 반응했다.

작년 9월 말 달러당 77.8엔에 불과했던 엔·달러 환율은 전날 99.1엔으로 약 7개월 사이 27.4% 급등했다.

지난 1개월간 상승률은 4.2%에 달한다.

18∼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일본의 통화 완화를 용인하는 분위기로 끝났기 때문에 환율 상승세는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행이 오는 26일 열리는 통화정책 결정회의에서 추가 유동성 강화 조치를 제시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국내외 전문가 "엔화 추세적 약세 부인 못 해"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엔·달러 환율의 100엔선 돌파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외국 투자은행(IB)들은 앞다퉈 엔·달러 환율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전날 기준으로 바클레이즈, 크레디트스위스, JP모간 등 14개 IB의 엔·달러 환율 6개월 전망치는 평균 달러당 100.58엔이다.

9개월 전망치는 달러당 100.78엔, 12개월 전망치는 달러당 103.25엔으로 모두 100엔선을 넘어섰다.

지난 10∼12일 사이 외국계 IB 4곳이 엔·달러 환율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데 이어 16∼19일에도 IB 4곳이 전망치를 높였다.

그만큼 엔화 가치가 하락할 것을 점쳤다는 의미다.

골드만삭스는 엔·달러 환율 12개월 전망치를 기존 달러당 95엔에서 105엔으로 대폭 올렸다.

씨티그룹의 3개월 전망치는 달러당 99엔에서 107엔으로 상승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가장 가파른 전망을 내놨다.

이들은 엔·달러 환율이 3개월 뒤에는 달러당 105엔, 12개월 뒤에는 달러당 120엔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엔화 약세 기조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국내 증권사들도 추세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삼성증권은 올해와 내년 말 엔·달러 환율 전망을 기존 달러당 95엔, 100엔에서 각각 105엔, 115엔으로 상향 조정했다.

허진욱 삼성증권 거시경제팀장은 "심리적인 저항 때문에 수치가 100엔 선 아래를 맴돌고 있지만 이미 촉매는 충분히 마련됐다고 본다"며 "이미 엔화 가치가 중장기적인 약세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상재 현대증권 경제분석팀장도 "한국 경제는 엔저 현상을 주어진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그 충격을 차단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한국 경제와 주식시장의 세계 금융시장과 탈동조화(디커플링) 압력이 당분간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hye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