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에 이어 이번에는 영국 파운드화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투자자들이 시장에 파운드화를 빠르게 내던지고 있고 일부 헤지펀드는 파운드화 하락에 베팅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런던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격은 지난주에만 1.8% 하락해 파운드당 1.54달러(18일 현재)까지 떨어졌다. 작년 5월 마지막주 이후 가장 빠른 하락세다. 올해 들어선 5.5% 내려갔다. 영국의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선 데다, 영국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통화 완화정책을 계속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미국·일본에 이어 영국까지 경기 부양을 위한 돈풀기 정책을 서로 용인하는 통화동맹을 맺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영국 경제 ‘트리플딥’ 빠지나?

영국의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분기 대비 0.3% 하락했다. 올해 1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면 영국은 기술적으로 삼중침체(트리플딥)에 빠진다. 지난해 2분기까지 3개 분기 연속 하락했던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3분기에 올림픽 특수로 0.9% 상승했지만 4분기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통상적으로 마이너스 성장률이 2분기 이상 지속되면 경기침체로 본다. 이 경우 영국은 금융위기 이후 세 번째 침체에 빠지게 된다.

영국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는 정부가 막대한 부채를 줄이기 위해 긴축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수출 대상국인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기도 침체돼 내수와 수출 모두 돌파구가 없는 상황이다. 채권 전문펀드 핌코의 마이크 에이미 펀드매니저는 “정부는 계속 지출을 줄이고 있고 국민들의 실질 소득은 줄어들고 있으며 투자와 수출도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앞으로 수년간 0~1%대에 머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니 효과’ 파운드화 하락에 기여

지난주 파운드화가 급락한 직접적 원인은 머빈 킹 영국 중앙은행 총재가 제공했다. 킹 총재는 지난 13일 “인플레이션을 감수하더라도 통화 완화정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지난 주말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도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각국의 경기부양책은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은 2009년 3월 이후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연 0.5%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다 오는 7월 영국 중앙은행 총재로 취임하는 마크 카니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는 킹 총재에 비해 통화 완화정책을 더 선호하는 인물이어서 투자자들은 파운드화가 추가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의 한 대형 은행 트레이더는 “시장에 ‘카니 효과’가 분명히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파운드화 매도세가 너무 강해 섣불리 상승 반전에 베팅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의 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전했다.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뒤에는 일본과 미국, 영국의 통화동맹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8일 칼럼을 통해 “지난 12일 주요 7개국(G7) 공동성명(엔저를 묵인하는 내용)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본과 미국, 영국의 협력관계는 더욱 공고해졌으며 이는 통화외교의 동맹 기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이미아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