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권영숙 씨(49)는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장보러 갈 때면 자체상표(PB) 상품 판매대부터 살펴본다. 1일에도 네 식구가 한 달간 먹을 ‘이마트 이맛쌀 20㎏’ 한 부대를 4만5800원에 샀다. 옆에 쌓여 있는 L브랜드 전통미(20㎏·6만5800원)보다 30%가량 쌌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롯데슈퍼에도 들러 ‘실속두부’ 2팩(팩당 350g)을 1980원에 샀다. 같은 등급의 P브랜드 두부보다 34%나 저렴하게 나와 있었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유통 파워’를 앞세워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PB상품들이 대한민국 소비시장의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PB상품은 더 이상 매장의 한 구석을 채우던 구색 상품이 아니다. 매출을 끌어올리는 주력 상품으로 성장하고 있다.

2006년 7%(4500억원)에 그쳤던 이마트의 PB상품 매출 비중은 지난해 28%(4조600억원)로 높아졌다. 금액으로는 6년 만에 9배가량 늘어났다. 홈플러스(매출 비중 26.5%)와 롯데마트(24.6%)는 지난해 매출의 4분의 1 정도를 PB상품 판매로 올렸다.

대형마트뿐만 아니다. GS수퍼와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은 지난해 총 매출의 33.9%를 PB상품으로 올렸고, 올해는 그 비중이 40%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유통업체의 제품 조달 노하우가 쌓이면서 상품의 종류도 쌀 같은 단순 품목에서 우유 두부 라면 등 가공식품과 화장지 압력밥솥 등 공산품, 삼계탕 육개장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이마트 롯데마트 등이 2011년 내놓은 ‘반값 TV’도 PB상품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가 최근 대형마트 3사의 2890개 품목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식품의 25.7%, 비식품의 51.5%가 PB상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종이컵이나 나무젓가락 등 일회용품은 81.3%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PB 시장 성장에는 2011년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경기 침체의 영향이 가장 컸다. 불황으로 가격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PB상품은 싸구려’라는 인식이 사라지고 ‘품질과 가격을 고루 만족시킨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주부들 가운데에는 PB 마니아도 늘어나는 추세다. 안지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PB상품 확대는 대형마트가 저성장 구조에 접어들자 생존을 위해 들고 나온 전략”이라며 “최근에는 경기 부진으로 주부 사이에 실속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소비시장의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hankyung.com

■ PB

private brand.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SSM), 편의점 등 대형 유통업체가 대기업 또는 중소 제조업체와 공동 개발해 판매하는 ‘자체상표’를 말한다. 제조업체가 자기 상표를 붙여서 내놓는 상품인 ‘내셔널 브랜드’(NB)와 구별되는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