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사진)이 삼성디스플레이와 벌이고 있는 특허 소송과 관련, 제한적 범위 내에서 협상할 뜻을 내비쳤다. 정부가 소송을 중재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 나온 발언이어서 난타전으로 치닫고 있는 두 회사 간 분쟁이 타협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 사장은 21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기자와 만나 “삼성이 결자해지 한다면 감정싸움을 그만하고 특허에 대해 주고받을 게 있는지 함께 얘기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양사가 서로 디스플레이 특허에 대해 바이올레이션(위반)한 걸 살펴보며 협상할 수 있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두 회사가 보유한 특허를 일부 공유하면 최소한 소송 확전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삼성과 벌이고 있는 특허 소송에 대해 침묵하거나 “현재 상황에선 얘기할 수 있는 게 없다”던 종전 입장에서 진일보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사장은 지난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삼성과 소송 타협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삼성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대타협 같은 건 이 자리에서 말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이런 입장을 보인 건 ‘처음 싸움을 걸고 소송을 확대한 건 어디까지나 삼성’이라는 게 LG그룹 안팎의 시각이기 때문이다. 또 LG가 먼저 화해 의사를 전달하면 ‘잘못한 게 많은 LG가 어떻게든 무마하려고 이러는 것 아니겠느냐’고 삼성 측이 악용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 사장도 여전히 단기간 내 대타협의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는 ‘모든 소송을 먼저 취하할 수 있냐’는 물음에 “거기까지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고 그건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답했다. ‘LG그룹이나 삼성그룹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사안이냐’고 묻자 “그러지 않겠냐”며 “정부가 삼성디스플레이 사장도 본다고 하니 그 다음에 무슨 얘기가 나올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특허분쟁 관련 부서인 지식경제부의 김재홍 성장동력실장은 18일 한 사장을 만난 뒤 “두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보다 삼성그룹과 LG그룹 차원에서 논의해야 할 사안인 만큼 곧바로 해결 방안을 내기는 힘들겠지만 타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실장은 22일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과도 면담을 갖는다.

양사의 디스플레이 분쟁은 지난해 시작됐다. 삼성디스플레이 연구원들이 LG디스플레이로 대거 옮겨간 뒤 검찰이 작년 7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 유출 혐의로 삼성과 LG 전·현직 임직원 11명을 불구속기소하면서다.

삼성이 지난해 9월 LG를 상대로 OLED 기술 사용금지 가처분을 낸 것을 시작으로 두 회사는 4개월 동안 총 6건의 민사 소송과 가처분 신청 등을 주고받았다. 삼성은 “LG가 인력을 조직적으로 빼간 뒤 삼성 기술을 빼내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LG는 “형사 고소뿐 아니라 민사 소송을 먼저 시작한 건 삼성”이라고 맞서고 있다.

민사 소송 6건을 각각 담당하고 있는 재판부들은 하나같이 “사건 내용이 복잡해 단기간 내 재판을 끝내기 어렵다”며 형사 소송 추이만 지켜보고 있다. 형사 소송을 맡은 수원지법은 당초 작년 말까지 선고를 마무리하려 했으나 “쟁점이 많다”며 추가 공판을 진행 중이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