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신년기획] 사업에 실패한 전직 건설업체 사장 "실패한 1막 이었지만 인생 2막 희망 줬으면…"
“저 같은 사람은 아무리 해도 다시 일어설 수가 없어요.” 지난해 말 서울역 인근의 신용회복위원회 상담창구에서 만난 임모씨(64·경기 고양)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는 경기 의왕시에서 조그만 건설회사를 운영했다.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직원 7명과 함께 쪼들리지 않게 살았다. 하지만 점차 미수대금이 쌓이면서 한계를 드러냈다. 2006년 회사 문을 닫자 남은 것은 2억원이 넘는 빚뿐이었다.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그는 한동안 법인택시를 몰았다. 몸은 고되고 벌이는 시원치 않았다. 정부가 추천한 직업훈련소도 전전해 봤지만 나이 탓에 그를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기회만 된다면 다시 사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파산 경력 탓에 은행 대출은 꽉 막혔다. 신용카드도 못 만든다. ‘혹시 대출받을 길이 있을까’하는 마음에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았지만 “대출업무는 취급하지 않는다”는 얘기만 들었다. 요즘 그의 수입은 한 달에 50만원가량인 국민연금이 전부다. 월세 낼 돈이 없어 처남집에 얹혀산다. 힘 없이 상담실을 나서며 그는 “단 한 번이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뭐든 열심히 할 각오가 돼 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자영업자 실업 지원 문턱 낮춰야

[2013 신년기획] 사업에 실패한 전직 건설업체 사장 "실패한 1막 이었지만 인생 2막 희망 줬으면…"
한번 빈곤층으로 추락하면 다시 일어서기가 힘든 게 우리 사회다. 누구나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사고, 질병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막상 재기를 돕는 프로그램, 즉 스프링 보드(구름판)는 크게 부족하다.

자영업자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전국 자영업자 수는 570만4000명. 전체 취업자의 23%에 달한다. 하지만 자영업자의 99%는 회사원과 달리 폐업하면 실업급여를 못 받는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고용보험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 같은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 종업원 50인 미만 자영업자(350만명)를 대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지만 가입자는 1만여명에 불과하다. 가입 대상자의 0.28%밖에 안 된다. 당장 먹고살기 바빠 고용보험료(소득별로 월 3만4650~5만1970원)를 내려는 자영업자가 드문 데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가게 문을 연 지 6개월 내에 고용보험에 가입해 1년 이상 보험료를 내야 하는 등 조건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직업훈련 서비스 강화해야

직업훈련 프로그램도 열악하다. 정부의 간판 직업훈련 프로그램으로 최장 1년간 ‘진로상담(1개월 20만원)-직업훈련(6개월간 월 31만6000원)-구직알선’을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는 ‘취업성공 패키지’만 해도 대다수 저소득층에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1년간 직업훈련 수당이 기껏해야 200만원 남짓이어서 당장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중장년층은 눈길을 주기가 어렵다.

실제 이 같은 이유로 지난해 1~11월 ‘취업성공 패키지’ 참여자는 13만6155명에 그쳤다. 이는 정부가 정한 목표치(22만6000명)의 60% 수준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올해부터 직업훈련 수당을 월 40만원으로 늘렸지만 여전히 열악하다는 지적이다.

상담 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전국 81개 고용센터에서 규모가 큰 곳 중 하나인 서울북부고용센터 상담사는 17명. 상담사 1명이 1년간 상담업무를 맡는 구직인원이 180~200명에 달한다.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하다.

반면 정부는 민간업체에 취업성공 패키지 사업을 위탁할 때는 상담사 1명당 구직 인원이 80명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임형권 서울북부고용센터 취업성공지원팀장은 “경험상 1년에 80명이 넘어가면 서비스 질이 떨어진다”며 “민간위탁에는 이런 기준을 적용하지만 정작 정부기관은 주어진 할당량 때문에 규정보다 훨씬 많은 상담업무를 처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취업지원 대상도 확대 필요

제도 자체에도 허점이 적지 않다. 올해 초 지방노동청을 찾은 오모씨는 ‘취업성공 패키지’를 신청하러 갔다가 창구 직원에게 “한 달 뒤에 오라”는 말을 들었다. 3개월치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저소득층 여부를 판단하는데 실직한 지 ‘두 달밖에’ 안 돼 저소득층 여부를 알 수 없다는 게 창구 직원의 설명. 오씨는 “지금 당장 소득이 없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데 왜 굳이 3개월치를 증명해야 하느냐”고 따졌지만 소용없었다.

정부도 이런 맹점을 인정한다. 류해종 고용노동부 고용지원실업급여과 사무관은 “저소득층 여부를 재산이나 소득으로 판정해야 하는데 행정력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3개월치 건보료 기준을 둔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정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산층 중에서도 특히 중하위 계층은 언제든 빈곤층으로 추락할 위험이 큰데 이들을 받쳐줄 사회 안전망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