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산업은행이 고금리를 미끼로 서울 강남권 돈을 싹쓸이해 바짝 긴장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자금이 남아돌면 더 문제 아닙니까.”

시중은행의 한 프라이빗뱅킹(PB)센터 지점장의 말이다. 거액을 예치하려는 소비자를 반기던 은행 관행이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단순히 예금만 하려는 고객에 대해선 특별히 우대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요즘 중산층 은퇴자들은 목돈을 들고 은행을 방문해도 예전만큼 대우받기 어렵다. 쏠쏠했던 우대금리(지점장 전결금리)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문제는 내년이다. 시중금리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내년 상반기 중 은행 예금 금리가 일제히 연 2%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은행 수신금리 연 2%대 눈앞

신한은행은 PB 고객들을 대상으로 판매해온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를 최근 연 3.4%에서 3.33%로 낮췄다. 신한은행의 한 지점장은 “그나마 개인 고객들에게 이 정도 금리를 지급하는 것”이라며 “기업 고객에는 연 2%대 금리를 준 지 오래”라고 말했다.

현재 은행권이 개인 고객에게 제시하는 정기예금 금리는 1년짜리를 기준으로 연 3.2% 안팎이다. 은퇴자들이 여윳돈 3억원을 한꺼번에 맡겨도 매달 수령할 수 있는 금액은 67만7000원 정도다. 2인 가구의 최저생계비(내년 기준 월 97만4231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김인응 우리은행 투체어스 잠실센터장은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고 미국 정부도 상당 기간 제로 금리 유지를 선언했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내년 기준금리를 또 낮출 가능성이 높다”며 “은행 금리가 일제히 연 2%대로 진입하는 등 은퇴자들에겐 최악의 상황이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중산층 및 서민 은퇴자들이 애용하던 저축은행 금리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 10월 기준으로 국내 저축은행의 정기예금(만기 1년) 금리는 연평균 3.93%에 불과했다. 1년 전(연 4.76%)에 비해 0.83%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우량 저축은행으로 분류된 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의 경우 예금 금리가 연 3%대 초반에 불과하다. 작년 말 63조107억원이던 저축은행 수신액이 올 9월 말 47조2701억원까지 줄어든 이유다. 퇴직금 등을 맡기고 평생 생활비를 타 쓰는 즉시연금 공시이율도 급락세다. 즉시연금의 경우 매달 공시되는 이율이 하락하면 종전에 가입했던 소비자도 똑같이 낮은 금리를 적용받게 된다.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공시이율은 지난 7월 연 4.7%였는데 이 달엔 연 4.3%로 낮아졌다. 불과 5개월 만에 0.4%포인트 하락했다. 1억원을 맡긴 은퇴자라면 월 2만~3만원의 연금액이 줄게 됐다. 삼성생명 등 생보사들은 추가 금리 인하를 고민 중이다. 이대로라면 역마진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김기홍 한화생명 강남FA센터장은 “종전엔 은퇴자들에게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자산 운용을 권해 왔다”며 “하지만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을 밑돌고 있어 요즘엔 투자형 상품에도 관심을 가질 것을 조언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과세 혜택 갈수록 줄어

정부는 세제를 대폭 개편해 각종 비과세 혜택을 축소하기로 했다. 내년엔 은퇴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전망이다.

우선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이 내년부터 3000만원으로, 현행보다 1000만원 낮아진다. 연간 금융소득이 3000만원을 넘으면 종합과세 대상자로 분류돼 최고 41.8%의 소득세를 내야 한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다 3년 전 은퇴한 황모씨(58)도 요즘 걱정이 많다. 우리은행 목동지점과 거래하는 황씨는 “예금 금리가 추가로 떨어지면 내년엔 이자가 연간 600만~700만원 줄어드는 것으로 은행에서 계산해 줬다”며 “그런데도 올해는 해당되지 않던 종합과세자로 분류돼 세금은 훨씬 많이 내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지역농협과 수협, 신협 등 협동조합에 맡긴 예탁금에 대해선 이르면 내년부터 비과세 혜택을 없애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올해까지는 1인당 3000만원 한도로 이자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됐다. 조합 출자금의 배당소득에 대한 비과세 혜택(1인당 1000만원)도 내년 또는 3년 후부터 폐지할 가능성이 있다.

은행 PB(프라이빗뱅커)들이 부유층에게 추천해온 장기 채권의 경우 분리과세 혜택이 크게 줄어든다. 연말까지는 이자소득에 대한 분리과세가 가능하지만, 내년부터 3년 이상 보유해야 같은 혜택을 볼 수 있다. 10년 이상 연금으로 수령하는 방식의 즉시연금에 대해선 비과세 적용을 받았지만 내년부터는 달라진다. 정부와 국회는 3억~5억원 이상 납입분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부동산 자산 비중이 높은 베이비부머들의 고민은 더욱 크다. 취득세 감면 효과가 올해 말로 종료되기 때문이다. 내년엔 부동산 거래가 더욱 위축될까 걱정하고 있다. 서울 옥수동에 거주하는 이목환 씨(56)는 “평수를 줄여 이사한 다음 여윳돈을 굴려볼까 했는데 집이 2년째 팔리지 않는다”며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조재길/박신영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