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인 A사의 작년 매출은 1200억원으로 3년 전보다 31% 늘었다. 그런데 이 기간 종업원 수는 300명에서 283명으로 17명 줄었다. 중소기업 졸업기준인 종업원(상시근로자) 300명을 넘기지 않기 위해 인력을 조정했다는 의혹을 산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는 중소기업 105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곳 중 3곳이 중견기업으로 지정되는 것을 피하려고 분사, 상시근로자 조정, 사업부문 매각 등 인위적 구조조정을 추진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3일 발표했다. 중견기업이 되면 중소기업 때와 달리 정부의 각종 자금 및 구매지원과 세금감면이 없어지기 때문에 성장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제조업분야에서 중소기업으로 남으려면 상시근로자 수가 300명 미만이거나 자본금이 80억원 이하여야 한다.

이 조사에서 전체의 29.5%인 31개사가 중소기업에 잔류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추진했다고 답했다. 이들 기업은 △분사·계열사 신설(38.8%, 12개사) △임시근로자 확대를 통한 상시 근로자 수 조정(29%, 9개사) △사업부문 매각·매출 조정 등 외형 확대 포기(16.1%, 5개사) △해외법인 설립(12.9%, 4개사) 등을 활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직까지 이런 방안을 검토한 적이 없는 기업(74개사) 중에도 27.2%(20개사)는 앞으로 졸업 기준을 충족하면 해외법인 설립, 자본금 조정 등 구조조정을 통해 중소기업으로 남겠다고 응답했다. 신규 사업에 투자하는 등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주력한다는 대답은 25.6%(19개사)에 그쳤다. 중소기업 졸업 회피를 추진한 경험이 있는 기업과 추진 의향이 있는 곳을 합치면 51개사로 조사 대상의 48.6%에 이른다.

중소기업들은 중견기업으로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정책금융·조세지원 혜택 축소(24.8%)와 시장진입규제·세무조사·회계감사 등 각종 규제와 부담 증가를 많이 꼽았다. 성장을 두려워하는 ‘피터팬 증후군’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중견기업 육성 방안 강구(40.7%)와 중소기업 정책 지원 및 육성 대상 선정 때 획일적 기준 적용 방식 변경(32.0%)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양금승 전경련 중기협력센터 소장은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규제와 부담을 늘리기보다는 성장경로별로 차별화된 지원을 통해 성장 동기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