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대선 후보들, 原電이 뭔지나 아시는지
대선 후보들이 이렇게 약체였던 적이 있었는지. 성장이면 성장, 민생이면 민생에 대한 해답이 하나라도 제시돼야 하는데 유세 때나 토론에서 쏟아지는 정책이라는 게 맹탕이거나, 실현 불가능한 헛구호 투성이다.

에너지 정책도 그런 경우다. 블랙아웃의 위기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생산 현장에 대한 전기공급을 조절해 근근이 넘어가는 판국인데 이들이 내놓는 에너지 정책이라는 게 그저 바른생활 수준이다. 바로 ‘탈(脫)원전’이다. 후쿠시마원전 사고에 놀란 일본이 원전 가동을 멈추면서 국내에서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주장되던 구호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아예 간판을 탈원전으로 내세웠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도 공약은 흐지부지해버렸지만 얘기를 종합해보면 결국 원전 추가건설 반대다.

작금의 블랙아웃 위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단지 원전 몇 기가 멈춘 탓이 아니라 폭발적인 수요 증가에서 비롯된 문제다. 수요관리로 올겨울 위기를 넘긴다 해도 내년 여름이면 다시 맞닥뜨려야 하는 위기라는 얘기다.

산업이 발전하고, 국민의 생활수준이 높아질수록 전력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생(省)에너지 기술이 발전한다한들 수요를 맞추는 데는 턱도 없다.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이라는 IT산업이 그런 경우다. IT산업의 발전은 서버의 규모와 수량에 비례한다.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값싼 전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IT산업의 발전도 불가능하다. 환경론자인 빌 게이츠가 원전 예찬론자이기도 한 까닭이다.

원전의 매력은 무엇보다 경제성이다. 석탄의 2분의 1, 액화천연가스(LNG)의 5분의 1, 기름의 6분의 1 값이면 같은 양의 발전이 가능하다. 한국의 전기 생산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35%나 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전기료를 싸게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원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일본이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 가동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일본의 전력 공급능력은 2010년 대비 12.7% 감소했다. 전기료는 10% 뛰었다. 게이단렌이 기업들에 물었다. 응답 제조업체 가운데 71%가 생산량이 감소했다고 답했고, 96%는 수익이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경쟁력은 더욱 취약해졌고, 견디다 못한 기업들은 엑소더스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올해 일본의 경쟁력을 10위로 한 단계 낮춘 이유를 전력분야의 경쟁력이 세계 17위에서 36위로 떨어진 탓이라고 설명했을 정도다.

후보들이 탈원전을 주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안전 문제다. 그러나 후쿠시마원전과 같은 사고를 미연에 차단시키는 기술은 5년 내 상용화된다. 위험한 것은 오히려 수력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게다가 중국의 해변에는 2030년까지 80기의 원전이 더 들어선다. 닭이 울면 인천서도 들린다는 가까운 곳이다.

후보들의 주장대로 탈원전도 좋다 하자. 에너지 자원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나라의 대선 후보들이다. 과연 이들의 대안은 무엇일까. 신재생에너지다. 참 순박하다. 현재 전체 전기생산량에서 차지하는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은 2.4%에 불과하다. 여기서 수력 등을 제외하면 요즘 얘기되는 진정한 의미의 신재생에너지는 0.1% 수준이다. 이를 원전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얘긴데, 천문학적 투자로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신재생에너지의 현주소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태양광은 빛이 바랜 지 오래다. 선진국들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제도를 폐지하고 있다. 교토의정서는 이미 휴지조각이 됐다.

일본의 슈칸분?(週刊文春)은 최근 원전 재가동에 대한 설문조사 기사를 게재하면서 ‘충격’이라는 단어를 썼다. 42%의 찬성이었다. 후쿠시마 사고를 당한 국민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치다. 찬성론자들의 반응은 이렇다. 너희들이 전기 없는 생활을 해봤는가. 전력 부족으로 일자리를 잃어봤는가. 누가 탈원전을 국민의 뜻이라고 했는가. 분노에 찬 목소리다.

대안 없이 가상의 위험을 앞세워 탈원전 여론을 조성하는 대선 후보들이다.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한심하다고 해야 할지. 탈원전을 주장하면서 성장과 일자리와 복지를 논하는 것은 위선이다. 그런데도 모든 후보들의 주장은 탈원전이다. 이런 후보들에게 나라의 미래를 맡겨야 하는지. 갑갑하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