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식으로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는 소비자가 많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까지 활용해 괴롭히는데, 고소한 뒤 알아보면 여러 기업으로부터 수십건의 고소·고발을 당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휴대폰을 만드는 국내 A전자회사 관계자의 얘기다. 기업들이 늘어나는 블랙컨슈머로 몸살을 앓고 있다. 목소리 큰 소비자와 기업들이 이미지 때문에 적극 대응하지 못하는 사정을 악용한 블랙컨슈머 사이의 경계도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어서다.

블랙컨슈머가 증가하는 것은 △불황 △소비자 주권의식 향상 △정부의 소비자 보호 강화 △SNS 확산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은희 인하대 생활과학부 교수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범죄인 줄 모르고 직업적으로 기업들을 상대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전방위적으로 증가

백화점 홈쇼핑처럼 소비자와 밀접한 유통, 패션, 식품업체 등에 머물던 블랙컨슈머들은 이제 휴대폰과 가전제품, 자동차, 금융 등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적정 수준을 넘어서는 과도한 보상요구 △규정에 없는 환불교체요구 △보증기한이 지난 후의 무상수리 요구 등 소비자로부터 불합리한 요구를 경험했다고 답한 기업이 최근 1년 새 61.1%에서 87.1%로 급증했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은 블랙컨슈머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블랙컨슈머들은 기업 이미지나 상품에 악영향을 미치는 정보가 SNS를 타고 급속히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 지난해 휴대폰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가열·훼손한 뒤 인터넷 등에 ‘충전 중 폭발했다’고 허위 사실을 퍼뜨렸다가 1년의 실형을 살게 된 A씨(29)가 대표적 사례다.

사이비 언론도 가세하고 있다. 기업들은 올해 광고주협회 차원에서 반론닷컴을 만들어 대응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잘못된 보도가 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지는 데다, 기업들의 해명은 거짓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 분위기 탓이다.

정부는 제조물책임법 개정 등을 통해 소비자들이 좀 더 쉽게 민원을 제기하고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데 정책의 역점을 두고 있다. 이은희 교수는 “정부가 소비자 보호만 할 것이 아니라 기업 대상의 과도한 보상 요구 등은 형사범죄의 처벌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등 계도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블랙컨슈머가 늘면서 행태도 발전하고 있다. 금융권에서 민원이 가장 많은 보험업계에서는 무작정 회사를 찾아와 생떼를 쓰거나 시위를 하는 사람은 적어진 대신 손해사정인을 통한 ‘전문화된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 유사 소비자단체까지 만들어져 기업들로부터 광고 등을 뜯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기업 대응에 한계

기업들은 한동안 블랙컨슈머에 대해 쉬쉬하며 조용히 덮자는 식으로 대응하다가 ‘원칙주의’로 조금씩 방향을 틀고 있다. A전자는 소비자민원센터, 애프터서비스전담 조직 산하에 블랙컨슈머에 대한 대응팀을 만들고, 부당한 요구가 10여 차례를 넘을 경우 고소·고발에 나선다.

금융사들은 외국처럼 악성 민원인과의 거래를 거절할 근거를 내부 규정에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홈쇼핑과 인터넷쇼핑몰은 생트집을 잡아 환불 요구를 반복하는 악성 소비자의 구매를 차단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소극적인 곳이 대부분이다. 정당한 민원과 악의적 민원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기업들이 “소비자를 무시했다, 불량품이 많다”는 등의 입소문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블랙컨슈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소비자 민원의 사실 여부를 떠나 분쟁이 일어나고 진행되는 과정 자체가 기업엔 부담스럽다”고 설명했다. B전자회사 관계자는 “블랙컨슈머 증가는 기업의 비용 부담을 늘려 결국 다른 소비자에게 이 부담을 전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석/임현우/이상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