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회사 피치가 일본 소니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투자부적격 등급인 BB-로 세 단계 하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파나소닉의 등급 또한 BBB-에서 BB로 두 단계 내렸다. 전자왕국 일본 기업들의 끝없는 추락이다. 물론 경기침체와 엔고, 첨단기술력 상실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본 정치나 사회시스템 관료체제 역시 경쟁력 하락의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일본 기업의 지배구조와 대리인 문제가 기업 쇠락의 주된 원인일 것이다.

집단지도 체제가 일본형 지배구조의 골격이다. 경영자는 필시 내부에서 발탁된다. 자연스레 이들은 기업을 구성하는 내부 생태계에만 시선을 고정한다. 리스크를 껴안는 과감한 투자는 뒷전이다. CEO후보들 간의 견제와 균형은 언제나 책임을 비껴가게 만든다. 과감한 전략은 배제되고 위험회피적 경영에 안주한다. 경영학자 아오키는 일본 기업은 아예 주주이익의 극대화가 아닌 주주와 종업원 은행 등 핵심 이해관계자들의 통합 이익을 극대화하는 조직이라고 비꼰다. 누군가 혁신을 외치고 나서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대리인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일본 기업의 지배구조다.

신제품을 얼마만큼 빨리 출시해 시장을 선점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디지털경제 시대다. 경영자들의 재빠른 결단과 과감한 리스크 투자가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이는 오너 체제에서만 가능하다. 위기의 도요타도 2009년 다시 오너 체제로 전환했다. 한국 기업의 성공을 오너 체제에서 찾는 경영이론가들이 많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정치권은 오너를 적대시하고 배제하는 기업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해 안달이다. 기업가 정신을 죽이겠다는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다. 한국기업의 앞날이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