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총리로 유력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자민당 총재(사진)가 다음달 16일 치러지는 총선(중의원 선거)을 앞두고 연일 강도 높은 경기부양 관련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아베 총재는 지난 14일 “중앙은행인 일본은행과 정책협조를 통해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최대 3%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일본은행의 발권력을 지목했다. 물가가 목표치에 다다를 때까지 무제한 돈을 찍어내겠다는 구상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건설국채를 발행하고 이를 일본은행이 전량 인수하는 ‘일본판 뉴딜’ 방안도 내놓았다. 이 역시 돈을 살포해 경제부흥을 노리는 ‘인위적 금융완화책’의 연장선이다. 일본은행 총재 인선에 개입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아베 총재는 “인플레이션 목표에 찬성하는 사람을 일본은행 총재 자리에 앉히겠다”고 선언했다. ‘물가안정’을 우선하는 일본은행에 ‘고용’에 대한 책임을 새로 부과하겠다는 아이디어도 덧붙였다.

돈을 찍어 경기를 살리겠다는 아베 총재의 구상에 대해 금융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지나치게 단순하고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국가 채무비율은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를 넘어선 상태다. 이 상황에서 무제한 돈을 찍어내면 재정 건전성이 버텨내지 못한다. 엔화가치가 폭락해 국제통화로서의 신용을 잃어버리고, 국내 금리가 급등할 우려도 높다. 국가신용등급도 대폭 강등될 수 있다.

현실적인 벽도 높다. 일본의 현행 재정법은 일본은행이 직접 국채를 매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일본은행에 고용책임을 부과하는 것도 일본은행법을 개정해야만 가능하다. 아베 총재의 금융완화책이 선거철에 반짝하다가 사라질 ‘포퓰리즘 정책’이 될 공산이 크다고 보는 이유다.

일본은행은 이날 열린 금융정책회의에서 추가적인 금융완화정책을 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일본은행 총재는 금융정책회의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재의 금융완화 정책에 대해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 등은 개발도상국에서조차 금기시하는 정책”이라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금융시장의 관심은 총선 뒤 사흘 뒤에 열리는 다음달 회의로 모아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정권이 바뀌는 다음달부터 금융완화정책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