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소비자’들이 금융사의 상품 전략과 금융감독 당국의 정책 및 업무 프로세스를 확 바꿔 놓고 있다. 높아진 소비자 권리 의식은 민원 증가로 이어져 당국의 일하는 행태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요즘 금융소비자들은 금융사의 전략을 쥐락펴락 한다. KB국민카드가 지난 2월 선보인 ‘혜담카드’가 대표적 사례. 연회비가 비싼(최고 30만원) 대신 주유 쇼핑 외식 등 12개 업종에서 할인 혜택을 주는 상품이다. 가입자 수를 약 10만명으로 예상한 회사 측은 30만명 이상이 몰리자 적자를 우려해 부가서비스를 줄이려고 했다. 이에 소비자들이 금융감독원에 집단 민원을 제기하자 내년 3월까지 현 부가서비스를 유지하기로 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은행·비은행, 보험, 금융투자 등 3개 금융권역 소비자들이 금감원에 제기한 민원은 4만7479건으로 전년 동기(3만7198건)에 비해 27.7% 증가했다. 이 가운데 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민원은 2753건으로 작년보다 115.6% 급증했다. 또 은행의 여신 관련 민원과 신용카드 관련 민원이 약 40% 늘어났다. 은행들은 특히 대출금리를 인하해 달라는 고객들의 민원에 대응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중에는 은행 직원보다 상품구조를 잘 알고 있는 민원인도 적지 않다.

정영석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 부국장은 “2008년 리먼 사태와 저축은행 부실 사태 이후 금융소비자들의 목소리와 권리의식이 높아진 결과”라며 “경기 침체로 과거에는 그냥 넘어갔던 문제들까지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민원 신청이 급증하자 금소처와 검사국 간 협력 강화를 위해 외부 인사들이 절반이나 참여하는 ‘소비자보호심의위원회’를 신설해 20일부터 운영하기로 했다. 그동안 소비자 보호 관련 부서에 비슷한 민원이 들어오더라도 검사국이 나서 제도나 관행을 바로잡는 데 소홀했다는 반성도 작용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심의위원회가 소비자 민원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선별해 검사국에 보내면 검사국이 현장 검사를 통해 바로잡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류시훈/박종서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