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감독체계는 지난 14년간 정권이 바뀌거나 ‘사건’이 터질 때마다 땜질식 개편이 이뤄져 왔다. 학계나 전문가, 금융회사 등과의 진지한 논의 없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나 관료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조직을 붙였다 떼는 식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3년 신용카드 대란 등을 겪은 후 개편 작업을 급조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란이 끊이지 않은 이유다.

올해도 대선을 앞두고 다시 해묵은 개편 논의에 불이 붙었다. 이번에는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공고한 금융감독체계를 마련해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4년 반복된 ‘땜질식’ 개편

통합감독체계가 도입된 시기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김대중 정부 때다. 당시 경제상황과 맞물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효율적인 단일 감독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때문에 1999년 은행감독원·보험감독원·증권감독원·신용관리기금 등 흩어져 있던 민간 감독기구를 금융감독원으로 한데 묶었다. 금감원 위엔 감독정책 결정 기관으로서 합의제 기구인 금융감독위원회를 만들었다. 금융정책 기능은 재정경제부에 남겨놨다.

금감위 설립 당시엔 행정보조를 위한 최소한의 공무원만 허용했다. 금감위원장이 금감원장도 겸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설립 취지와 달리 금감위는 몸집을 불렸고 금융회사들에 대한 지배력을 놓고 금감원과 자주 갈등을 빚게 됐다.

이후에도 금감위와 금감원의 불안한 동거는 지속됐다. 2000년 상호신용금고 부정대출로 진승현·정현준 게이트가 발생하면서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기획예산처와 재경부 주도로 금융감독조직혁신 태스크포스(TF)가 구성돼 금감위와 금감원을 민관합동의 단일기구로 통합하는 개편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개편안은 심의과정에서 논란 끝에 무산됐다.

신용카드 대란으로 위기에 처했던 노무현 정부 때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다시 불 붙었다. 카드대란이 감독기능 중복으로 인해 빚어졌다는 감사원의 지적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당시 개편안은 결국 재경부, 금감위, 금감원의 역할분담을 다시 한번 교통정리한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2008년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인수위원회 내 정부혁신규제개혁 TF를 통해 ‘감독기구 설치법’을 개정하고 재경부 금융정책국과 금감위를 통합해 금융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금융위가 국내금융 정책을 총괄하는 대신 국제금융 정책은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이 맡기로 했다. 동시에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 자리도 분리했다. 하지만 수장이 둘로 나뉘면서 두 기관의 엇박자가 잦아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감독(금융위)과 집행(금감원) 간의 중층적 구조 해소에 실패하면서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작년부터는 잇따른 저축은행 부실 및 비리 문제가 제기되면서 총리실 주도로 전면적인 체계 개편 연구에 들어갔다.

◆밥그릇 싸움 양상

최근엔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금융위 폐지와 금융정책 기능의 재정부 이관, 금감원 이원화 등을 담은 금융산업 및 감독 관련 공약을 발표하자 이해 관계자들이 섣부른 금융감독체계 개편의 후유증을 경고하며 반발하고 있다. 핵심 이슈는 금융정책·감독기관 분리 여부와 금융소비자보호 조직 분리 여부 등 두 가지다.

우선 금융정책·감독기관 분리 또는 통합 문제는 금융위의 국내 금융정책 기능을 재정부로 이관(금융위 해체)하느냐, 금융위와 금감원을 합치느냐로 의견이 나뉜다. 현재까지 공론화 과정에선 금융위를 분리·해체해야 한다는 쪽이 힘을 얻고 있다. 금융위가 과거 금융산업의 팽창이나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금융정책을 편 결과 ‘신용카드 대란’과 ‘저축은행 사태’를 가져왔다는 이유에서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정책은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산업정책이고 금융감독은 금융산업 안정을 위한 규제정책으로 상호대립적 관계”라며 “분리가 국제적 추세”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반대하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바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고 불쾌감을 나타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금융위가 있어 좀 더 신속하고 성공적인 (위기) 대응이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금감원을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과 금융소비자보호 기능을 분리하느냐 여부에 대한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건전성 감독 및 소비자 보호기구가 양립하는 ‘쌍봉형(Twin Peaks)’으로 가느냐, 현재와 같이 두 기능을 통합하느냐를 두고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김 위원장은 “금융소비자 보호는 시대적 과제”라며 “세계 추세도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기능을 따로 두는 쌍봉형 체계”라고 지적했다. 대선후보 3명도 모두 쌍봉형 체계를 지지하는 분위기다.

반면 금감원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쌍봉형 체계를 도입한 호주와 네덜란드가 사실상 운용과정에서 실패한 데다 조직 개편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국내 금융감독 체계를 쌍봉형 모델로 전환하면 앞으로 5년간 1조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며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감독체계 개편에 신경쓸 틈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어설픈 개편이 반복되면 감독당국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고 정책과 감독의 일관성이 떨어질 수 있다. 김홍범 경상대 교수는 “그동안 학계나 전문가, 금융권의 논의가 대선 이후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왔다”며 “이번 기회에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을 거쳐 치밀한 준비를 해 오래 갈 수 있는 금융감독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창민/류시훈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