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면활성제가 들어간 치약, 플라스틱으로 만든 컵, 에폭시 도료를 칠한 옷장, 폴리에스터로 만든 옷, ABS수지로 마감된 냉장고까지.

쓰인 곳보다 쓰이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화학소재는 일상과 함께한다.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의 부품과 자동차, 항공의 첨단 소재에도 화학은 필수다. 이처럼 1970년대 이후 우리 생활의 패러다임은 화학소재산업의 발전과 함께 변화해왔다.

31일부터 11월3일까지 나흘간의 일정으로 경기도 일산 킨텍스 제1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화학산업대전(KICHEM 2012)은 이 같은 화학산업의 진화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전 산업의 화학화가 진행되는 현재와 더불어 고기능, 다기능으로 발전해 가는 화학산업의 미래도 볼 수 있다.

올해 처음 열리는 화학산업대전은 한국석유화학협회가 주최하고 지식경제부와 경기도, 한국화학산업연합회가 후원한다. LG화학, 호남석유화학, SK종합화학, 한화케미칼, 금호석유화학 등 글로벌 화학업체 200여개가 참가해 700여개 부스에서 정밀화학과 플라스틱, 고무와 섬유 등 종합소재 분야의 첨단기술과 제품 등을 선보이고 있다. 늘 함께하지만 볼 수 없었던 화학산업의 현장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정범식 한국석유화학협회 회장은 31일 개회사를 통해 “화학산업은 경제성장 초기 중화학입국의 견인차 역할을 충실히 해 오늘의 한국 경제를 일궈냈다”며 “우리 경제가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한 지금도 주력산업인 만큼 화학산업의 중요성이 재인식돼야 한다”고 말했다.


화학산업은 국내 제조업 중 생산 1위 산업이다. 지난해 수출 1293억달러, 무역흑자 455억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은 1972년 국내 최초의 나프타분해공장(NCC) 가동 이후 올해 6월 기준 에틸렌 생산능력은 828만으로 82배 성장했다. 40년의 짧은 역사에도 생산액 기준으로는 세계 6위, 에틸렌 생산 규모는 세계 4위 수준으로 올라섰다. 합성수지는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1063만으로 세계 4위 규모다.

화학 부문은 자동차와 건설, 조선과 반도체 등 국내 주력산업에 기초 소재를 공급하는 핵심 기간 산업이기도 하다.

특히 첨단산업의 전방에서 힘을 발휘하며 미래 융복합기술의 기초가 되고 있다. 스마트폰의 경우 발광다이오드(LED)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같은 핵심부품부터 케이스와 액정보호필름 등 일부 금속 부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부품과 소재에 화학기술이 적용된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시트 등에 쓰이는 합성섬유와 합성수지는 물론 도료와 타이어, 오일류 등 자동차 생산에 사용되는 화학소재 종류는 100여가지가 넘는다.

석유화학협회 관계자는 “2짜리 중형차 한 대엔 350~400㎏가량의 화학소재가 사용된다”며 “연비 절감을 위해 경량화 소재 적용은 갈수록 더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천연소재를 대체해 환경지킴이 역할도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연간 1800만의 건축용 폴리염화비닐(PVC)은 남한 면적 14%의 산림을 보호할 수 있는 규모이고 국내 폴리에스터 섬유 수요를 대체하려 해도 충청남도 면적 이상의 면화 재배지역이 필요하다.

이 밖에 화학업계는 동반성장 기금 운용과 공동 연구·개발(R&D)로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에 앞장서고 마이스터고교 설립, 이동화학교실 운영을 통해 과학교육 지원사업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간 이 같은 역할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고 화학업계 전체를 아우르는 자리가 없었다는 데 의견을 모아 화학산업대전을 준비한 것이다. 업계는 이번 전시회가 화학산업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산·학·연·관 협력체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화학협회는 앞으로 2년이나 3년 주기로 정기적으로 화학산업대전을 열 예정이다.

정 회장은 “화학산업은 국제경쟁력을 지닌 석유화학 부문이 선도하고 있는 반면 정밀화학, 바이오화학 등의 분야는 발전 과정에 있어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며 “업계도 R&D 강화로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이루고 동반성장과 화학인재 양성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