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배임죄 논란] "배임죄 강화땐 기업활동 위축…경영판단 원칙 法에 명문화해야"
‘업무상배임죄는 필요악인가. 대안은 없나.’

정치권을 중심으로 처벌 강화 방안이 제기되는 업무상배임죄는 모호한 법조문 자체의 문제점 외에도 경제사범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 문제 등 다양한 이슈를 내포하고 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1년의 경우 횡령·배임 혐의로 1심 형사재판을 받은 사건 총 5716건 가운데 1496건(26.2%)만 실형 선고됐다. 집행유예 건수는 2081건(36.4%)이었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집행유예가 적지 않지만 정치권은 판사재량(작량감경)에 따라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법정형을 7년 이상으로 크게 올리는 ‘배임죄 대못 박기’를 시도하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12일 가진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한목소리로 “배임죄 처벌 강화는 불특정 다수의 속만 시원하게 해주는 포퓰리즘적 발상”이라며 “경제문제에 대해 대기업을 겨냥한 정치논리로 풀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제사범, 정치논리로 접근 안돼

[업무상배임죄 논란] "배임죄 강화땐 기업활동 위축…경영판단 원칙 法에 명문화해야"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경제사범은 경제와 법논리로 풀어야 하는데 정치논리에 끼워 맞추려다 보니 부작용이 속출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손창열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는 “그동안 기업가에게 너무 관용적이었다는 여론이 있었다 해서 갑자기 강하게 처벌하자고 해선 안 된다”며 “사안에 따라 범죄행위의 동기, 범행 결과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송세련 경희대 법학부 교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의 현행 법체계를 문제삼았다. 기업하기에 법적 환경이 너무 ‘투박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미국의 경우 기업가의 책임과 더불어 권리도 함께 제도적으로 정비해 놓고 있는데 한국 기업가에게 권리에 대한 기준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배임죄 처벌 강화 … 기업가정신 위축

배임죄 처벌이 강화되면 적지 않은 부작용이 예상된다. 기업가정신을 위축시켜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데다 처벌을 면하기 위해 불필요한 소송을 남발해 사회적 비용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검찰 법원 등 국가권력 개입의 확대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게 좌담회 참석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주인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상필벌을 강조하면 공무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복지부동한다. 마찬가지로 기업가들도 배임죄가 강화되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위험을 감수하며 시장을 개척하고 투자를 확대해야 하는데 업무상배임죄 처벌 강화가 이런 기업가정신을 위축되게 한다는 얘기다. 손 변호사는 특히 공기업에서는 중재로 그칠 일에도 배임 의혹을 벗기 위해 소송까지 가는 경우가 속출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중겸 한국전력 사장이 전력거래소 등을 상대로 4조4000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것도 배임죄 기소가능성을 우려한 때문으로 알려졌다.

민간부문에 대한 국가 개입 확대가 미칠 부작용도 문제점이다. 경영 실패에 대해 손해배상청구 등 민사적 방법이 아니라 검찰이 나서 소액주주나 채권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전근대적 방식 아니냐는 지적이다. 물론 범죄인 취급해 형사적으로 압박할 경우 사재출연을 이끌어내는 등 재벌총수를 압박하는 효과는 확실하다는 점이 경험적으로 입증됐지만 좋은 선례는 아니라는 것이다. 송 교수도 “국가가 자꾸 나서면 주주들의 권리의식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회사관계, 권리관계의 주도권이 국가에서 개인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법은 경영판단 원칙 입법화

소유와 경영이 잘 분리된 선진국에서는 배임죄 이슈가 크지 않다. 이인영 변호사(미국 로펌 맥더모트윌앤에머리의 한국대표)는 미국에도 배임죄가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룹 총수가 뒤에서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검사가 90% 이상 입증해야 총수가 책임진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주 교수는 “한국에는 정서법이란 게 있어 총수가 이사회에서 빠지면 ‘책임은 안 지고 뒤에서 조종한다’며 비난한다”고 지적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업무상배임죄를 형법에서 삭제하는 것은 어떨까. 좌담회 참석자들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경영판단원칙을 법에 명문화하는 것이 결국 해법으로 제시됐다. 송 교수는 “미국에서 판사는 경영판단을 평가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경영진의 경영판단에 법원의 개입을 배제하는 것이다. 그는 “경영판단원칙의 법제화가 대안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배임죄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형법 제355조2항)

■ 업무상배임죄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제355조의 죄(배임)를 범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형법 제356조)

■ 경영판단원칙

이사 등 기업 경영진이 경영판단을 신중하게 했고, 그 내용이 부적당하지 않은 이상 설령 기업에 손해가 발생했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 미국에서 19세기부터 비슷한 판결이 나와 판례법으로 확립됐다. 한국 법원에서도 부분적으로 이 원칙을 적용한 판결이 나온다.

김병일/장성호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