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긴 하지만 갈등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열과 혼란으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면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디겠습니까. 우리와 경쟁해야 하는 일본과 중국 기업들입니다.”

17일 서울상공회의소 회장단 정례 회의가 열린 서울 롯데호텔. 회의 시작에 앞서 티타임을 갖는 기업인들의 나지막한 대화 사이로 “어렵다” “안 좋다” “힘들다”란 단어들이 자주 섞여 나왔다.

가장 먼저 회의장에 도착한 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은 “중국 등 신흥시장 경기도 부진하지만 내수는 상황이 더 좋지 않은 듯하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곧 이어 도착한 손경식 서울·대한상의 회장과 수출 시장 및 내년 경기 전망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은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며 “하반기로 갈수록 어느 정도 회복될 줄 알았는데 되레 꺾였다”고 털어놨다. 김억조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들어서자 기업인들은 “고생 많았다”며 “그래도 현대차는 상황이 낫지 않느냐”고 했다. 김 부회장은 지난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티타임과 손 회장의 인사말 이후 1시간30분간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동근 대한상의 부회장은 회의 분위기에 대해 “수출과 내수가 전반적으로 침체 국면에 빠진 상황에서 경제민주화로 논란에 휩싸이기보다는 우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전했다.

지난 6월 회의 때보다 심각해진 경제 상황과 대선 공약으로 구체화하고 있는 경제민주화 논란을 의식한 듯 회장단의 발언 강도도 그만큼 세졌다. 회의 중엔 “중국이 안 좋고 유럽도 어렵다” “내수는 수출보다 더 힘든 상황이다” 등 현 경기 상황에 대한 어려움부터 “성장을 훼손시켜 가면서 이루는 경제민주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장을 위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를 마친 후 손 회장은 기자와 만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화 절상으로 수출기업들의 경쟁력 약화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는 극단적인 이분법과 양극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노력과 역할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평가하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회장단은 기업인의 국감 소환과 관련해서도 “기업인의 국감 출석은 대외활동 제한에 따른 경영 차질뿐만 아니라 기업이미지가 손상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꼭 필요한 경우에만 기업인을 소환하도록 합리적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 침체에 대한 다양한 해법도 내놓았다. 무엇보다 가라앉은 내수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서비스산업 규제를 완화할 것을 요구했다. 회장단은 “서비스산업은 고용 창출 효과가 큰데도 불구하고 규제가 많고 제조업에 비해 정부 지원도 미흡하다”며 “규제를 풀고 지원을 강화해 서비스산업에서 투자와 고용이 활발히 일어나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경기 침체와 관련해서는 “국회에 계류 중인 분양가상한제와 다주택자중과세 등의 폐지 법안이 통과돼야 하며 양도세 비과세 혜택과 취득세 감면 대상도 확대 시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으나 대선과 맞물려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중소기업협력센터가 대기업 2차 협력사 269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근 2년간 1, 2차 협력사 간 동반성장 수준이 ‘좋아졌다’고 답한 곳은 39.7%였다. 1, 2차 협력사 간 하도급 거래의 공정성이 ‘개선됐다’고 평가한 곳은 42.0%였다. ‘나빠졌다’는 답은 각각 7.9%, 9.3%로 긍정적 평가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윤정현/김현석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