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중국 베이징 올림픽공원 지하에 있는 CJ CGV 영화관. 방학 기간이어서 젊은이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매표소는 의외로 한산했다. 낯선 중국 영화와 외국 영화 몇 편이 상영 중이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도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지난 7월 한국에서 흥행몰이를 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베트맨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27일에야 개봉한다는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이 영화관의 김명준 점장은 “중국 광전총국(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에서 7~8월에는 블록버스터급 외국 영화를 상영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다”며 “지금은 중국 영화와 철지난 외국 영화 몇 편만 상영하다 보니 관객이 적다”고 설명했다.

◆닫힌 문화산업

중국 영화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평균 35%가 넘는 성장세를 보여왔다. 지난해 영화 흥행 수입은 전년에 비해 30%나 증가한 130억위안으로 미국 일본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국에서 새로 문을 연 영화관만 803개(스크린 수로 3030개)에 이른다.

그러나 한류 열풍을 등에 업은 한국 영화들은 이곳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중국에서 정식 수입해 개봉한 한국 영화는 ‘제7광구’가 유일하다. 중국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이유로 외국 영화 수입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1년에 몇 편밖에 수입하지 못하니 수요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로 몰린다.

한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한 어린이 만화영화 뽀로로도 중국 텔레비전에서는 볼 수 없다. 외국 만화영화에 대한 규제가 너무 강해 미국 디즈니사의 작품 등을 제외하면 TV 만화영화는 중국산 일색이다. 뽀로로 제작사인 아이코닉스의 이병규 상무는 “최근 5년간 한국이나 일본 만화영화가 중국 TV에서 방송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은 이미 문화대국에서 문화강국으로 도약을 선언했다. 중국 하면 떠오르는 값싼 브랜드와 어두운 이미지를 떨쳐버리려면 문화 부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열린 제17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6중전회)에서 처음 문화강국을 국가 목표로 제시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12차 5개년계획에서는 문화산업을 지주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68%인 문화산업 비중을 2015년 5% 이상으로 높인다는 것이다.

◆한류 만든 능력으로 콘텐츠 만들어야

지난해 중국 문화부가 선정한 최고의 콘텐츠는 뮤지컬 중국판 맘마미아였다. 지난해 베이징 상하이 등에서 200회 공연에 2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빅 히트를 쳤다.

류위주(劉玉珠) 문화부 산하 문화시장사 대표는 “맘마미아는 중국 문화개혁 창신(혁신)의 큰 성과”라고 극찬했다. 중국인들이 맘마미아에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성훈 중국CJ 상무는 “비록 맘마미아의 원작이 영국이지만 중국인들이 출연해 중국어로 작품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맘마미아는 중국 대외문화그룹과 동방미디어그룹, 그리고 한국 CJ 등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합작기업이 만든 작품이다.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맘마미아를 공연했던 CJ가 중국업체들과 공동으로 중국 판권을 가져와 제작했다. CJ는 맘마미아의 성공으로 외자기업으로는 처음 중국 공연시장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맘마미아처럼 한류를 만들어낸 능력으로 중국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중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인들이 한국의 작품에 호감을 갖는 것은 한국의 우수한 콘텐츠 제작 능력 때문이지 한국의 문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황재원 KOTRA 베이징무역관 부관장은 “한류를 좋아하는 중국인에게 춘향전을 보여주면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스타일이 아니라 중국 스타일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시장 진입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함께 세계로 진출

중국 정부는 문화산업의 쩌우추취(走出去·해외 진출)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 문화가 세계 시장에 나가 기존 중국 이미지를 바꿔주길 바란다. 그래야 중국 제품들도 해외에서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중국 문화의 해외 수출은 여전히 갈길이 멀다.

CJ는 지금 한국인 감독과 중국 서커스 배우들을 기용, 무언극을 제작 중이다.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이 무언극을 해외 시장에 진출시켜 한국의 난타처럼 중국 무언극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게 CJ의 의도다. 김 상무는 “중국 정부가 가장 원하는 것은 중국 문화의 세계화”라며 “우리가 그들과 손잡고 그들의 꿈을 실현시켜 준다면 중국에서 뿌리를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중국 콘텐츠업계에서는 ‘우호적 파트너십’이라는 용어가 유행이다. 중국의 문화 콘텐츠 회사와 상품이 국제화할 수 있도록 기획, 상품화, 세계 시장 진출 등을 도와주고 그 이익을 나누는 방식을 말한다. 디즈니가 중국 최대 애니메이션 캐릭터 브랜드인 시양양(喜羊羊)의 세계 배급을 맡는 대신 자사 프로그램을 CCTV를 통해 방영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허진호 감독과 배우 장동건 등을 기용해 영화 ‘위험한 관계’를 제작한 천웨이밍 중보미디어 대표는 “한국은 중국인과 정서가 비슷한 데다 감각이 뛰어나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잘 만들 수 있다”며 “한국과 중국이 손잡으면 세계 시장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태완 특파원(베이징·충칭) 이정호 기자(상하이·우한) 노경목 기자(칭다오·창춘·훈춘)

한국경제·LG경제연구원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