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론 내 가족의 명예까지 걸고 말한다. 담합도, 자진신고도 하지 않았다.”(A은행 은행장)

“우리 회사를 자진신고 회사라고 거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찾아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B증권사 사장)

공정거래위원회가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을 조사 중인 가운데 한 금융회사가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했다는 이야기가 떠돌자 금융사들은 일제히 “우리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라며 강력 부인했다. 공정위의 신속한 조사 확대와 내부 자신감에 비춰볼 때 리니언시(자진신고감면제도)를 활용해 담합을 인정한 기업이 최소 한 곳 정도는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다. 조사 대상은 모두 19개. 이 가운데 ‘배신자’가 있다면 18 대 1의 ‘진실게임’이 시작된 셈이다.

◆증권사 “담합할 이유없다”

증권사들은 지난 17일 공정위가 CD금리 담합 의혹 조사에 착수한 이후부터 시종일관 “증권사는 CD금리 담합으로 아무런 이득을 취할 수 없다. 따라서 담합을 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담합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리니언시를 노린 자진신고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업계 전체적으로 CD를 유통하고 받는 수수료는 월 10억원대에 불과하다”며 “증권사들은 리니언시가 자진신고의 유인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증권업계에선 “자진신고를 한 금융회사가 있었다면 이는 은행 중 하나일 것”이란 추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3월 말 현재 은행권 CD금리 연동 대출이 324조원에 달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담합 수혜를 가장 많이 보는 곳이 은행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은행장들 일제히 부인

은행들은 최고경영자들이 직접 해명에 나서고 있다. 민병덕 국민은행장은 “신규 고객뿐 아니라 기존 대출고객들도 금리를 낮춰준다고 하면 곧바로 다른 은행으로 옮겨가는 판에 어떻게 금리를 담합하느냐”고 말했다. 이순우 우리은행장도 “몇 푼을 더 벌기 위해 금리를 담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하춘수 대구은행장은 “은행권이 무한경쟁 시대에 살고 있는데 금리를 담합할 실질적인 이유가 없다”고 했다. 또 성세환 부산은행장은 “대출 지표금리를 빨리 바꿔야 하는데 안 바꿔서 발생한 문제일 뿐”이라며 “공정위가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담합 및 자진신고 여부를 묻는 요청에 회사 방침상 ‘노코멘트’라고 답한 SC와 HSBC를 제외한 7개 은행들도 모두 “우리는 아니다”고 부인했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우리는 작년 10월 이후 CD를 발행한 적도 없고 CD 잔액도 없다”고 했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과 신충식 농협은행장도 “자진신고에 해당될 일이 없다”고 밝혔다.

◆자진신고 회사 나중에 밝혀져

리니언시를 받은 기업들의 명단은 조사와 제재가 모두 마무리된 뒤에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가 지난 3월 농심·삼양식품·오뚜기·한국야쿠르트 등 라면 제조업체 4곳이 담합을 했다는 이유로 총 135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을 당시 자진신고 기업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삼양식품이 지난 17일 공시를 통해 과징금 116억1400만원 전액을 감면받았다고 밝히면서 ‘정체’가 드러났다.

공정위가 지난해 10월 16개 생명보험사들을 대상으로 모두 365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을 때도 당시 삼성·교보·대한생명 등은 리니언시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을 함구했다. 하지만 복수의 기업이 리니언시 명단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업계에 알려졌다.

공정위가 리니언시 기업을 밝히지 않는 것은 공정거래법 22조에 자진신고한 기업의 동의가 없으면 공정위도 이를 밝힐 수 없다고 나와있기 때문이다. 자진신고를 한 기업도 담합을 저질러 놓고 리니언시 제도를 활용해 법망을 빠져나갔다는 비판을 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상열/이상은/김일규/박신영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