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19일 기자들과 만나 공정거래위원회의 CD 금리 담합 조사와 관련, “CD 금리가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으면 의심할 수는 있지만, 결론도 나기 전에 금융회사들을 ‘파렴치범’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자칫 국내 금융시장의 대내외 신뢰만 추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금융회사가 ‘리니언시’를 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우리가 파악해 보니 은행과 증권사 모두 (리니언시를)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권 원장은 공정위가 9개 은행에 대한 현장조사에 들어간 지난 18일엔 출장지인 일본 홋카이도에서 상황을 보고받고 “유감을 표명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과 협의 없이 금융시장에 메가톤급 후폭풍을 몰고올 수 있는 조사에 들어간 데 대한 불쾌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괜한 오해가 빚어질 수 있다”며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의도적으로 전화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시장에 큰 혼란을 줄까 걱정이다. 담합 의혹이 있다면 부처 간 협조를 통해 체계적으로 스케줄을 갖고 움직여야 하는데, 독단적으로 나가면 중구난방이 된다”는 의견을 요로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의 전격적인 증권·은행사에 대한 조사로 시장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는 공정위와 CD 금리의 문제점을 파악했으면서도 대안을 내놓지 못한 금융당국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선 한국의 금융질서와 신뢰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사안에 대해 공정위가 너무 성급하게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MB정부에서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곳이 공정위”라며 “만약 우리가 담합을 했다면 은행장들이 책임져야 할 사안이고, 반대로 무리한 조사였다면 김동수 위원장이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를 만큼 사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CD 금리에 연동된 대출 규모는 324조원으로 총 대출의 30%에 달한다. 담합이 있었다는 결론이 나오면 수많은 대출자들이 집단소송에 나설 수 있다. 권 원장이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급 효과가 있기 때문에 사전에 귀띔이라도 해주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다.

금융당국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금감원이 지난해 말 시중은행과 한국은행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CD 금리를 대체할 금리를 찾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지만 금융위가 “금감원이 왜 나서느냐”며 제동을 걸었고, 논의는 중단됐다. 공정위의 이번 조사는 결국 금융당국이 자초했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공정위의 CD 금리 담합 조사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금융당국 간 영역 다툼이 존재한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위가 금융소비자보호법을 만들어 금감원 내에 준 독립기구인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신설하기로 하자 한국소비자원을 산하기관으로 둔 공정위가 발끈했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금융소비자연맹에 의뢰해 변액보험 공시이율을 조사해 발표한 것이나, 소비자들의 은행 근저당권 관련 소송을 지원한 것도 금융영역으로 자신들의 권한 행사를 확대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금융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사전에 충분한 협의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해야 할 정부 부처들이 서로 영역다툼을 벌이는 사이 오히려 시장엔 혼란과 갈등만 커져가고 있다”며 “이 정부에 컨트롤타워가 있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